급등 후 급락으로 물가·증시에 파란불투기세력 자금줄 막혀 당분간 하락세 이어질 듯

그동안 국제 원자재 가격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다.

주지하듯이 국제 유가는 심리적 저항선으로 간주되던 배럴당 100달러 수준을 넘어서더니 순식간에 배럴당 110달러 수준에 이르렀고, 작년 말만 하더라도 온스당 900 달러이던 금 가격도 어느새 1,000 달러를 넘어서면서 연일 사상최고치를 경신하였다.

또한 알루미늄, 철, 동, 니켈 등의 금속, 비금속류도 크게 올랐고, 거기에다 옥수수며 밀, 혹은 옥수수, 콩, 원당 등의 곡물류의 가격도 상승행진에 동참하였다.

이런 상황이 3월 중순 이후 급격하게 바뀌고 있다. 원자재 시장에서 가격의 하락폭이 크다. 더구나 단순히 급등에 뒤이은 조정이라고 말하기에는 하락의 정도가 너무 가파르다.

그러기에 국제 원자재 시장의 동향이 심상치 않다는 것을 이유로 일부에서는 혹시 과거 1640년에 네덜란드에서 벌어졌던 튤립파동처럼 투기세력이 빠져나간 이후의 장세가 원자재 시장에서 재연되는 것이 아니냐는 분석이 조심스럽게 제기되고 있다. 당시 튤립 한 뿌리의 가격이 8,000달러까지 치솟았다가 그 75달러 수준으로 처박혔듯이 최근 크게 오른 원자재 가격이 급락할 수도 있다는 기대 섞인 이야기이다.

실제로 원자재 가격의 동향을 한 눈으로 보여주는 원자재 가격지수의 하락폭이 만만치 않다. 원자재 가격지수의 대표격인 다우존스-AIG 상품지수는 3월13일의 고점 225.97에서 지난주 초에는 200선마저 무너진 197.26을 기록하였다.

채 열흘도 되지 않는 기간 동안 13% 가량 추락한 셈이다. 또한 선물시장에서 곡물, 원유 등 주요 21개 상품의 선물가격으로 산출한 CRB상품선물지수도 일주일 만에 8.3%나 밀려나는 모습을 나타내었다. 이는 지수가 만들어진 1956년 이후 한 주일동안의 하락폭으로는 최대기록이다.

지수도 지수이지만 개별 상품의 하락폭은 상품별로 상당히 크다. 예컨대 밀은 고점에서 15% 이상 추락하였고, 콩도 13% 이상 급락세를 나타내었다. 우리가 가장 관심을 가지고 있는 원유가격도 배럴당 110달러를 넘어선지 오래지않아 배럴당 100달러 수준으로 밀려났다. 역시 단기간에 10% 가량 하락한 상태이다.

그동안 원자재 가격이 상승한 것이 오로지 투기 때문만은 아니다.

수급의 문제도 있다. 경제성장의 와중에 세계 원자재를 무한정 빨아들여 “원자재의 블랙홀”로 불리는 중국에서의 원자재 수요가 꾸준하게 늘어났으며 밀, 원당, 콩 등의 곡물은 온난화와 가뭄에 따른 생산량 감소라는 이유로 공급이 줄어들면서 가격이 오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알루미늄, 니켈, 동, 주석 등과 같은 금속 혹은 비금속류는 수요가 늘어나더라도 공급이 즉시 증가할 수 없다는 구조적인 이유로 상승하였던 것도 사실이다. 또한 미국이나 유럽 등의 주식시장이 연일 하락세를 나타내다보니 그 대체수단으로 원자재 시장이 각광을 받은 것도 최근 원자재 가격이 치솟게 된 이유로 손꼽힌다.

하지만 역시 원자재 가격 상승의 주된 원인은 무엇보다도 투기 때문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의견이다. 미국이 서브 프라임 부실로 인한 위기상황을 타개하려고 달러 금리를 인하하고, 그 영향으로 달러화의 매력이 저하되자, 국제 투기자본들이 방향을 원자재 시장으로 돌린 것이 최근 원자재 가격이 크게 오른 배경이다.

그러나 이는 역설적으로 원자재 가격이 폭락할 수 있다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근본적으로 그동안 수요가 많아서 가격이 오른 것이 아니라 투기로 인한 “가수요”로 인하여 가격이 올랐으므로 가수요가 사라지면 원자재 가격이 하락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다. 최근에 원자재 가격이 하락하는 것도 투기세력이 줄어든 탓이다.

국제 투기자본이 원자재 시장에서 발을 빼는 것은 “자금줄”이 막혔기 때문. 국제 투기자본은 자기자본을 이용하기도 하지만 대부분 수익률을 높이기 위하여 레버리지 즉 타인자본을 동원한다.

예를 들어 자기자금 10만원에 타인자금 90만원을 빌려 모두 100만원으로 투기에 뛰어들었다가 수익률 5%, 즉 5만원만 수익이 나더라도 자기자본 수익률은 무려 50%가 되는 셈.

그러니 투기자본은 최대한 레버리지를 동원한다. 하지만 타인자본을 빌릴 수 없다면 투기자본은 돈을 벌 수단이 없어지므로 투기에서 발을 뺄 수밖에 없다. 최근의 상황이 바로 그렇다. 서브 프라임 부실로 인하여 미국의 각 금융기관이 몸을 움츠리면서 보수적으로 자금을 운용하게 되었고, 이로 인하여 투기자본에 대하여 신규자금을 빌려주기는커녕 오히려 상환을 요구하게 된 것. 이것이 원자재 시장에 직격탄으로 작용하고 있다.

또한 지난 튤립파동처럼 현재의 원자재 가격이 비정상적으로 급등한 상황이므로 어차피 하락할 수밖에 없다는 인식도 감돌고 있기에 이래저래 원자재 가격은 당분간 하락세가 이어지리라 기대된다.

다만, 금융시장은 수요와 공급이 탄력적으로 변할 수 있는 반면에 원자재 시장은 그렇지 못하다. 예컨대 금의 수요가 늘어난다고 갑자기 땅을 파서 금의 공급을 늘릴 수도 없는 처지이므로 항상 수요에 비하여 공급이 부족할 수밖에 없고, 이는 구조적으로 원자재 가격이 오르는 빌미로 작용한다.

그러기에 투기가 줄어들면서 원자재 가격이 하락하기는 하겠으나 “급락”을 기대하기는 아직 시기상조라는 의견도 많다.

여하간 하락폭이 어떻든 지금으로서는 원자재 가격이 오르기보다는 내릴 공산이 훨씬 크다.

그리고 이는 우리나라 경제나 혹은 증권시장에는 호재로 작용할 것은 당연한 이치이다. 그동안 원유가격의 상승으로 연일 기름 값이 치솟았고, 밀이며 원당가격 상승을 이유로 라면, 과자 등의 가격이 그동안 올랐던 터.

따라서 거꾸로 원자재 가격이 안정세를 되찾는다면 물가 안정에도 보탬이 될 것은 틀림없다. 거기에다 원자재 가격 하락으로 인하여 인플레 심리도 진정되고, 기업의 원가 부담도 낮아질 것이기에 증권시장에도 긍정적인 역할을 하리라 예상된다. 봄이 오면서 덩달아 경제에도 봄이 찾아오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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