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을 접으며] 청와대는 "척보면 안다?"


청와대가 최근 정부 부처에 언론 보도에 대한 일일보고서 제출을 지시하면서 기사의 성격을 5가지로 분류할 것을 주문했다. 분류 기준은 정부 정책에 대한 긍정 기사와 단순 기사, 건전 비판과 악의적 비판, 그리고 오보 등이다. 이 보고서는 매일 아침마다 청와대에 보고돼 부처 성격에 따라 정책상황실과 국가안전보장회의, 홍보ㆍ민정 수석비서관실에서 취합, 노무현 대통령에게 보고된다고 한다.

올바른 국정운영을 위해 언론보도 분석도 분명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사안이다. 정부 정책이 국민에게 잘못 알려진다거나 국익에 반(反)하는 방향으로 기사가 쓰여질 경우 정부 차원에서 기민한 대응도 필요하다.

태산같이 산적한 현안을 놓아 두고 대통령의 오전 일정이 고작 각종 신문 기사들의 평가 비교 및 이에 대한 대책 마련으로 시작하느냐는 지적은 굳이 하기도 싫다. 당사자가 그 일이 가장 중요한 국정운영 중 하나라고 생각하는데 어쩌겠는가.

하지만 방법론 면에서는 회의가 인다. 기사 구분 자체가 너무 자의적으로 흐를 공산이 있는 점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건전 비판과 악의적 비판의 기준에 대해 “척 보면 알지 않느냐”라고 설명했다. 척 보면 안다니….

이라크 파병문제만 놓고 보자. 일부 신문은 반전ㆍ평화에 입각한 파병반대에 무게를 두고 보도했고, 다른 신문은 한미 동맹과 국익우선이란 논리에서 기사를 구성했다. 어떤 게 건전 비판이고 어떤 게 악의적 비판인가.

또 청계천 복원과 관련한 서울시 개발계획을 놓고 복원 이후의 대책이 부실하다고 걱정하는 기사를 썼다고 치자. 해당 부처에서 이를 순순히 건전 비판으로 분류해 주겠는가. 온갖 이유를 대서 해당 기사를 악의적으로 몰고갈 것은 자명하다. 어떤 공무원이 자신에게 불리한 기사가 나왔을 때 순순히 이를 받아들이겠는가. 어떡하면 대통령의 눈을 가릴 수 있을까 고민하지 않을까? 이 경우 어떻게 이를 객관적으로 입증할 것인가.

청와대 언론정책의 다음 수순이 궁금하다. 자신들이 보기에 악의적 비판과 오보를 양산한 언론사를 선정해 어떻게 처리할 지 관심이 쏠린다.

유신정권 때처럼 일선 기업들에게 광고게재 금지 지시라도 내리는 것이 아닌지, 혹은 표적 세무사찰이라도 나서는 것이 아닐지 우려된다. 묻고 싶다. 지금의 이 글은 정부에 대한 악의적 비판인가 건전비판인가. 그것도 아니면 오보인가?

염영남 기자


입력시간 : 2003-10-01 15:24


염영남 기자 libert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