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을 접으며] 은행 합병은 왜 해!


‘우는 아이 떡 하나 더 준다’지만 떡도 자꾸 주면 버릇이 된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고 하지 않았던가. 이젠 은행 합병에서 이 정도의 ‘떡’은 불문율이 된 듯하다. 향후 몇 년간 고용 보장이니, 임원 비율 동수 구성이니, 임금 인상이니…. 정도의 차이는 있었지만 국민과 주택은행의 합병 때도, 하나와 서울은행의 합병 때도 비슷했다.

조흥은행 노조는 고용 보장과 임금 인상, 신한지주 임원 동수 구성 등 혁혁한 성과를 올렸다. 우는 아이를 자꾸 달래다 보면 떡도 갈수록 커지는 법인가 보다. 은행 대형화만이 금융산업을 발전시킬 수 있다고 확신하는 정부(참여정부 들어서는 생각을 달리하는 인사들도 적지 않지만)는 합병만 시킬 수 있다면 이런 부수적인 떡쯤은 마구 쥐어줘도 괜찮다고 여기는 것 같다.

합병만이 능사인지는 아직 검증되지 않았지만, 적어도 합병의 가장 큰 장점이 ‘시너지 효과’라는 것을 부인할 이는 아무도 없다. 중복된 점포를 폐쇄하고, 비효율적인 인력을 정리하고, 전산통합 등으로 시스템 비용을 축소하고….

만약 이런 것이 전제되지 않으면 물과 기름 같은 두 조직이 합병후 겪어야 할 상당 기간의 내홍을 고려할 때 합병은 하지 않은 만 못할 수 있다. (발끈하며 반론을 제기할 이들을 위해 첨언하자면, 전체 금융산업 측면에서 그렇다는 것이지, 인수한 신한지주나 하나은행의 장삿속으로만 보면 어찌 됐건 득이 될 가능성은 있다. 헐값 매각 논란도 계속되고 있으니.)

아직 실험 중이긴 하지만 합병 국민은행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노조와의 약속 탓에 점포나 인력 구조조정은 거의 이뤄지지 않고, 전산 통합도 지연되면서 규모에 걸맞는 실적을 올리지 못해 고민중이다. 오히려 수익성 악화에 몸살을 앓고 있다. 현 시점에서 본다면 합병 국민은행이 국민과 주택 두 은행 체제보다 우리 금융 산업에 도움이 된다고 누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겠는가.

은행 합병을 진두지휘한 한 시중은행 임원은 이렇게 말한다. “합병 후 1년 내에 인력과 점포 구조조정을 완료하느냐에 성패가 달려 있다”고. 이 말을 100%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적어도 3년간의 고용 보장을 약속한 신한과 조흥의 합병은 치명적인 핸디캡을 안고 출발하는 거다.

이영태 기자


입력시간 : 2003-10-02 15:54


이영태 기자 yt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