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을 접으며] 자살 밖에 방법이 없는가


8월4일 아침 편집국에는 긴급 소식이 전해졌다. 정몽헌 현대 아산이사회 회장이 현대사옥 12층에서 투신 자살했다는 것. 기자들은 바로 현장으로 뛰어갔고 믿기 힘든 일은 곧 사실로 확인됐다.

이후 TV와 국내ㆍ외 통신들은 앞다퉈 정 회장 자살 뉴스를 속보로 다루기 시작했다. 빈소가 마련된 현대 아산병원에는 유족과 현대그룹 관련 인사들이 모여들었다. 한 주를 시작하는 월요일 아침 출근길에 들려온 가장 충격적인 뉴스였다.

유서가 발견된 데다 타살 흔적이 없어 정 회장의 죽음은 본인의 선택인 듯 하다. 그렇다면 이 뉴스를 접한 사람들의 공통적인 생각은 ‘왜’로 모아진다. ‘왜 자살했을까’ ‘재벌총수가 도대체 왜…’ 이다.

자식을 죽인 뒤 스스로 목숨을 끊고, 카드 빚에 몰려 옥상에서 땅바닥으로 몸을 던지는 등 잇단 자살이 우리 사회의 큰 문제로 등장했지만 이는 극심한 생활고에 시달리는 서민계층에 한정된 현상이었다. 현대 가(家)의 기세가 예전만은 못하더라도 정 회장은 국내 최고 기업군의 총수이고 현대그룹이 오늘 내일 할 정도로 위중한 상황은 아니었다.

그런데도 정 회장은 자살을 선택했다. 추정컨대 대북사업과 관련한 검찰 조사가 점차 강도를 더해가면서 그간 감춰졌던 뭔가가 공개되는 것을 두려워했던 것은 아닐까? 또 그로 인해 선친의 평생 가업을 이루지 못할까 강박관념에 시달린 것은 아닐까?

생활고에 밀려 자살에서 도피처를 찾는 이들에게 사회학자들은 ‘빈곤층에 대한 적절한 사회적 안전망이 구축되지 못한 상태에서 벌어지는 사회적 타살’로 규정하곤 한다. 극심한 불황의 직접 피해를 본 절대 빈곤층에 대한 사회적 무관심이 계속될 경우 자살 충동 심리는 더욱 확대될 것이란 경고도 있다. 하지만 정 회장은 이들과 상황과 전혀 달랐음에도 불구하고 문제 해결의 방식을 자살에서 찾았다.

연이은 사회적 비극의 참 의미를 풀어 가는 것은 살아 남은 자들의 몫이다. 단순히 사회적 지원 시스템 구축으로 해결될 일도 아니고 그렇다고 자살을 당사자의 탓으로만 돌리기에는 너무 무책임하다. 보다 건강하고 건전한 사회적 분위기가 조성되도록 우리 모두가 마음가짐을 가다듬어야 할 때다. 고 정주영 명예회장의 5번째 아들로 너무 일찍 아버지 곁으로 떠난 정몽헌 회장의 명복을 빈다.

염영남 기자


입력시간 : 2003-10-05 16:02


염영남 기자 libert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