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을 접으며] 노조는 공공의 적?


그럴 리는 없었겠지만 이런 가정을 해본다. 만약 최근 타결된 현대자동차 임단협에서 협력업체 직원들의 근로 수준까지 대폭 향상시켰다면. 지금처럼 “협력업체 직원들이 상대적 박탈감을 느낀다”며 에둘러 비판하는 대신, 열이면 아홉 “노조 권력이 협력업체 직원들의 임금까지 올렸다”며 더욱 격분했을 테다. 말하자면 지금의 비판은 근로자들이 다 같이 잘 사는 것이 아니라 다 같이 못 사는 평등을 말하려는 것이 아닐까.

“더 이상 밀리면 기업 못해” “노조위원장은 사장급” “하청중기업체 노동자 피멍” “노조 절반을 쉬고 경쟁력 있겠나” …. 요즘 노조를 대하는 여론의 태도를 보면 마치 군부 독재 시대로 되돌아간 느낌이다. 적어도 노조관에 있어서 만큼은 진보도 보수도 따로 없는 듯 보인다.

핍박 받던 노조가 사회적 정당성을 확보하기 시작한 지 불과 10여년에 불과하지만 언제부터인지(아마도 외환 위기를 지나 경기가 불황에 접어든 때부터인 것으로 생각된다) 노조는 다시 ‘공공의 적’으로 추락했다. 임금을 올릴라 치면 기업, 나아가 국가 경쟁력을 저해한다는 비판이, 파업을 할라 치면 국가 경제를 볼모로 잡는다는 비판이 하나의 공식이 돼 버렸다.

물론 노조 스스로 이런 비판을 자초한 측면이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구태를 벗지 못하고 뚜렷한 이슈도 없이 연례 행사처럼 노동 쟁의행위를 해 온 것이나, 도저히 수용 불가능한 요구 조건을 내건 뒤 그 대가로 노동 조건을 향상시키는 행위 등은 마땅히 비판을 받아야 한다.

문제는 언론이 노조의 정당성은 도외시 한 채 부정적 측면만 집중 부각하는 데 있다. 현대차의 경우를 보자. 합병 등의 중요 사안에 대해 노조가 간여할 수 있도록 한 ‘노조 경영 참여’의 일부 항목에 대해서는 논란의 소지가 있다고 치자. 한 발 더 나아가 임금 인상이 기업의 가치를 떨어뜨리고 나아가 국가 경쟁력을 저해한다는 논리는 어떤가. ‘최소 임금, 최대 착취’라는 개발독재 시대의 기업운영 방식이 가장 효율적이라는 얘기란 말인가.

지금의 비판이 그 ‘과도함’을 지적하고자 함을 모르는 바 아니다. 하지만 그것이 ‘있는 자’들의 시각에서 본 지나치게 작의적인 기준이거나,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픈 수준이라는 느낌을 좀처럼 지울 수 없다.

이영태 기자


입력시간 : 2003-10-05 20:18


이영태 기자 yt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