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을 접으며] 결코 자유로울 수 없는, 자유롭지 못한 재계


“재계에서 30번째 안에 드는 기업치고 비자금이나 정치자금 파문 부메랑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롭다고 자신하는 곳이 있다면 한번 꼽아 보십시오.”(한 경제단체 K상무)

정치개혁을 부르짖는 정치권의 자해성(?) 고해성사는 오랫동안 내려온 정경유착의 언저리를 탈피, 분위기를 100% 전환하기엔 역부족이다. 권노갑 전 민주당 고문의 구속으로 또다시 정치자금 문제가 불거지자 기업들은 몸을 바싹 움츠렸다. 혹시 자신에게로 튀지 않을까 전전긍긍이다.

12ㆍ19 대선을 앞두고 부당한 정치자금 제공 반대를 목청껏 외쳤건만 정치권의 내민 손을 끝까지 외면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냥 ‘묵묵이’로 지냈을 뿐 ‘후 폭풍’을 감안해 보험은 들었을 터다.

권 전 고문의 결백 주장으로 독이 오른 검찰이 2000년 4ㆍ13 총선 당시 여당의 정치자금 전반에 대해 수사를 확대할 경우 현실적으로 삼성과 LG , SK 등 재계 서열 5위권내 대기업들은 수사망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굳이 ‘걸면 걸리는’ 검찰의 올가미가 아니더라도 K 상무의 자조대로 DJ 정권 시절 정치자금에 자유로운 기업이 어디 있는가? 자칫 시범케이스로 걸려 기업의 신뢰도와 투명성은 물론 해외 신인도에 타격을 받지 않도록 몸조심하는 수밖에 어떤 대안이 있는가?

현대는 고 정몽헌 회장의 장례를 치르자마자 비자금 파문으로 난감한 표정이다. 삼성 LG 등 다른 대기업들도 노무현 대통령의 ‘대선 자금 고해성사’ 발언과 정대철 민주당 대표의 ‘200억원 정치자금 모금’ 폭탄 선언 등으로 조마조마하다. 정당한 법 절차에 따라 정치자금을 지원했으며 ‘불법 자금’은 없다고 손사레부터 치지만 그렇게 자신 있는 표정은 아니다.

정치자금을 둘러싸고 본격적으로 ‘진실게임’에 돌입하면 사태는 더욱 복잡해진다. 만사 제쳐놓고 그 일에 매달려야 할 형편이다. 그러니 정치 자금문제가 터질 때마다 기업은 한 숨부터 짓는다. “언제까지 이렇게 해야 하나…” 맞는 말이다. 국민소득 2만 달러란 캐치프레이즈는 저 멀리 있는데, 달려가려니 정치자금이 발목을 잡는 격이다. 이제는 이 올가미를 풀어줘야 기업도 제대로 뛸 수 있다.

장학만 기자


입력시간 : 2003-10-06 09:17


장학만 기자 local@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