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와 오늘] 김정일 위원장의 10월


한반도의 올 겨울은 바깥은 춥지만 안에서는 봄의 따스함이 있을 것 같다.

노무현 대통령은 10월 31일 제2회 평화포럼에서 “북핵 문제는 결국 다자간 대화를 통해 포괄적으로 해결될 것이고 6자 회담은 곧 다시 열리리라고 본다”고 했다.

이에 앞서 중국의 CCTV는 30일 하오 7시 속보로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평양을 방문중인 우방국(禹防國) 중국 전인대 상무 위원장 간에 합의가 이뤄졌다고 보도했다. “6자 회담이 동시 행동 원칙에 기초한 일괄 타결안을 실현하는 과정으로 된다면 앞으로 6자 회담에 나갈 용의를 북한측이 표시 했다”는 것이다.

또 미국의 백악관 대변인은 “북한이 6자회담을 원칙으로 동의했다는 보도에 고무됐다”고 말했다. 국무부 대변인은 “북한의 핵포기, 미국의 안전 보장 및 경제 지원 등 양측이 바라는 사안을 동시에 행동에 옮기자”는 ‘동시 행동 원칙’에 대해 부연했다. 이어 그는 “동시 행동은 우리가 사용한 단어가 아니라는 것을 지적 하고 싶다. 만일 그들(북한)이 자기네의 제안들로부터 얘기를 시작하고 싶다면 그것도 괜찮다”고 긍정적 태도를 보였다.

이런 긍정과 고무의 배경에는 영하 20~24도까지 내려가는 한반도 북쪽 혹한속에서 새해를 맞아야 하는, 수령직 승계 10년째의 김정일 위원장이 내린 ‘벼랑끝’ 탈출이 있다. 김 위원장은 중국의 권력 서열 2위인 우 상무 위원장이 평양에 오리라는 소식을 이미 알고 긴 은둔에서 10월 20일에야 빠져 나왔다. 9월 9일 건국 58주년 이후 모습을 감췄던 그가 그날 제534부대 농장에 나타난 것이다. 40여일만의 공개 행사였다.

그는 2월 12일 평양 주재 러시아 대사관을 방문한 뒤, 50일 동안 잠적한 일이 있다. 김일성 수령의 탄신일인 4ㆍ15 태양절을 기리기 위해 4월 3일 김형직(수령의 아버지) 군에 있는 대학 방문에 나서기까지.

김정일 위원장의 올해 10월은 그가 즐겨 쓰던 핵과 미사일로 한국ㆍ일본ㆍ미국을 위협하던 ‘벼랑끝 외교’를 마감하는 것으로 예측됐다. 어쩔수 없는 혹한이 중국 대륙에서 몰아오고, 미국에서 불어대는 물결을 벼랑 끝에서는 막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가 은둔해 있는 사이, 세계 식량 계획은 북한이 올 겨울에도 극심한 식량난에 빠질 것이라고 경고 했다. 그가 핵강국을 추구하는 한, 11월에는 적어도 68만명의 구호 대상자가 배급을 못받게 된다는 것이다. 세계식량계획은 올해 식량 지원을 위해 필요한 자금은 2억380만 달러지만 확보된 것은 1억 2,000만 달러여서, 노인들에게 갈 식량배급을 중지 할 수밖에 없다고 발표했다.

그가 모습을 드러낸 후인 10월 25일 제주도 민족평화축전에 참가한 북한 대표단은 당초 약속한 220만 달러를 다 주지 않는 한 제주를 떠날 수 없다며 평양행 비행기 출발을 연기하는 소동을 벌였다. 400명을 보내는 조건으로 220만 달러를 약속 했으나 예술단과 취주단 190명이 오지 않은 터에 개런티를 줄 수 없다는 대회 조직위, 원래 계약대로 하라는 북측이 서로 다툰 것이다.

이런 현상은 결국 ‘민족과 평화’라는 김 위원장의 명분과, 통일 정책이 어떤 식으로든 북한의 부족한 달러를 획득하는 데 기여해야 한다는 현실 경제 사이의 모순에서 나온다. 그러나 북한의 현실은 그 명분을 세우지 못하게 하고 있다. 9월 15일께부터 시작된 비행기편 평양 관광은 11월 2일 출발 예정이던 10차 관광부터 내년 4월 20일까지 중단 된다고 26일 발표된 것이다. 중단 이유로 북측에서는 “겨울이 다가오면서 관광객들의 안전 사고와 전력난, 안내원의 피로 등이 증가한다”며 이유를 댔다.

그러나 전력난이 원인으로 관측된다. 여기에는 근거가 있다. 조선 중앙통신은 10월 27일, “6월 16일 교통사고로 장기간 입원치료를 받아오던 김용순 동지(당중앙위원, 대남비서 조평통 부위원장)가 26일 69살을 일기로 애석하게도 서거 하였다”고 발표했다.

김 비서는 지난 6월 13일 김 위원장의 황해도 봉산군 염소종축장 방문을 수행한 것이 공식행사의 마지막이었다. 서거 보도가 있기까지는 평양을 드나드는 차량에 중상을 당했기 때문이라는 얘기가 나돌고 있었다. 김 위원장이 주최한 만찬에 참석했다가 사고를 냈다는 것이다.

자동차가 적은 평양에서 음주 운전 차량과 충돌했다는 것은 뒤집으면 북한의 전력난으로 가로등 체계가 엉망이라는 사실을 드러내 주는 것이기도 하다. 가로등 체계의 미비가 사고의 원인이라면 1945년 해방 이후 한반도 전력의 85%을 보유했던 북쪽이 얼마나 전력난에 시달리는가를 여실히 증명 해준다.

김 비서가 만일 6월 15일(일요일) 저녁에 ‘6ㆍ15’ 3주년을 자축하는 만찬에서, 퇴임한 김대중 대통령이 KBS와 가졌던 인터뷰를 평소 대로 김 위원장과 함께 시청했다면 그는 미국과의 ‘어쩔수 없는 다자회담’을 권했을 지도 모를 일이다. 거기서 김 전대통령은 “북한은 먼저 핵을 포기하고 국제 사찰을 수용한 뒤에 체제 보장을 요구해야 한다. 북한이 여러 번 기회를 놓쳐 안타깝다.

서울 답방도 실행 했어야 했다. 남한내 ‘온건 세력’의 입지를 곤란하게 하니 안타깝다. 최근의 한반도 위지에는 북한의 책임이 크다. 북한과 잘하겠다는 남쪽 사람들을 궁지로 몰고…그래서 북한에 반대하는 ‘강력세력’에 구실을 주고…”라고 말했다.

북한의 2003년 10월은 ‘어쩔 수 없는 현실’에 밀려, 벼랑 끝 전술에서의 탈피를 모색해 가야 하는 때다. 통이 큰 것으로 알려진 김 위원장은 이번에야 말로, “당근만 내밀지 말고, 스테이크를 내 놓아라. 약속(핵ㆍ미사일ㆍ재래식 군사력 등의 감축안)을 어길 때는 쇠몽둥이를 맞겠다”는 대협상안을 미국에 내걸어야 한다.

박용배 언론인


입력시간 : 2003-11-04 13:55


박용배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