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을 접으며] 이조시대와 정씨그룹


조선 500년을 ‘이조(李朝)시대’라고 표현했던 것이 그리 먼 얘기가 아니다. 태, 정, 태, 세, 문, 단, 세, 예, 성, 연, 중, 인, 명, 선…. 태조 이성계에서부터 마지막 27대 왕 순종까지 전주 이(李)씨 가문이 대대로 왕의 지위를 세습했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었다. 일제시대 조선의 정통성을 폄하하려는 일본인들이 그렇게 부르기 시작했고, 해방 이후에도 수십년을 아무런 수치심 없이 그렇게 불려왔다.

최근 현대그룹을 둘러싼 경영권 분쟁을 보며 ‘정(鄭)씨 그룹’이라는 표현을 떠올리게 된다. 그룹의 모태는 그들이 ‘왕(王) 회장’으로 칭송하는 고(故) 정주영 전 명예회장이 해방 직후인 1947년 입지(立志ㆍ30)의 나이에 창업한 현대건설이었다. 반세기에 걸친 현대그룹의 역동적인 역사의 시작이었다.

전후 복구사업에 뛰어들고, 국가 기간산업을 구축하고, 최초의 국산 고유 자동차를 개발하고, 그리고는 그토록 소망했던 대북 사업을 개척하고…. 그렇게 역사를 만들어 나가는 동안 건설에서 시작한 현대는 자동차, 증권, 중공업, 백화점, 정보통신, 아산, 택배 등으로 영역을 확장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왕 회장’의 형제들과 아들들, 즉 정씨 일가가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한국식 재벌의 전형이었다. 그만큼 현대에 대한 그들의 애착은 강할 수밖에 없었을 테다.

왕자의 난, 왕 회장의 사망, 핵심 계열사의 유동성 위기, 그룹의 분리 그리고 정몽헌 회장의 자살 등에 이어 최근 현대그룹은 또 한번의 소용돌이에 빠져 들었다. 이른바 ‘숙질의 난’. 고 정몽헌 회장 사후 ‘지원군’ 역할을 자처했던 왕 회장의 막내 동생 KCC 정상영 명예회장이 하루 아침에 ‘반란군’으로 돌변해 조카 며느리인 현정은 현대엘리베이터 회장의 자리를 위협하며 그룹의 ‘왕’ 자리를 놓고 양측의 갈등이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양측의 심정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충분히 헤아릴 만하다. 정 명예회장은 “정씨 일가가 피땀 흘려 일군 그룹을 다른 집안에 빼앗길 수는 없다”는 것일 테고, 현 회장 역시 “출가외인인 만큼 이미 정씨 집안 사람인데 남편의 회사를 아내가 물려받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있지 않을까.

허나 조선시대가 ‘이조시대’가 아니었듯이, 현대그룹 역시 ‘정씨 그룹’은 될 수 없고, 또 그래서는 안 된다. 조선을 이끈 것이 민중들의 역동적인 힘이었다면, 지금의 현대그룹을 있게 한 것은 땀흘려 일한 직원들과 뒤에서 밑거름이 돼준 국민들이었다. 그들의 경영권 다툼은 이 점을 철저히 외면하고 있다. 정씨 일가로서의 정통성에만 집착하다 혹시 연산군 같은 폭군이 나오지나 않을지 누가 알겠는가.

이영태 기자


입력시간 : 2003-11-19 11:33


이영태 기자 yt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