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의 눈] 제2의 김종선을 막으려면


나이가 이제 스물아홉인 김종선씨는 사실상 전쟁 미망인이다. 지난해 서해교전에서 침몰된 참수리호의 조타장으로 실종 41일 만에 시신이 인양된 고 한상국 중사의 부인이다. 한 중사와는 8개월 가량 함께 살았다고 한다. 혼인신고를 먼저 한 김씨는 2002년 가을에 결혼식을 올릴 계획이었는데, 웨딩마치를 불과 몇 달 앞두고 차디찬 주검으로 돌아온 남편을 피눈물로 맞아야 했다.

이별의 눈물은 마를 날이 없지만, 김씨의 가슴을 더욱 아프게 하는 것은 서해교전이 국민들로부터 잊혀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덩달아 남편의 존재도, 죽음의 가치도 잊혀져 가는 게 안타깝다.

서해교전 1주기였던 지난 6월, 그녀는 주한미군으로부터 따뜻한 위로 편지를 받았다. 그러나 우리 정부로부터는 마음이 담긴 위로를 받지 못했다고 한다. 대북 관계를 고려해 유족들이 그냥 서해교전 자체를 잊고 살아갔으면 하는 것 같다고 했다. 그러면 앞으로 누가 국가를 위해 목숨을 바치겠느냐는 게 그녀의 항변이다.

섭섭한 마음은 군부대에 전시된 참수리호를 볼 때마다 더욱 복받친다고 한다. 나라를 지키다 적의 불시 공격으로 벌집이 된 함정을 일반인의 접근이 어려운 군부대에 전시하는 이유를 그녀는 이해할 수가 없다. 즉각 전쟁기념관으로 옮겨서 모든 국민이 그때 그 순간을 제대로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김씨는 최근 미국 매사추세츠주의 작은 도시 우스터의 ‘센트럴 매사추세츠주 한국전 참전기념탑’ 제막식에 갔다 왔다. 기념탑은 한국전 당시 숨진 191명의 우스터 출신 참전용사를 기리는 것이다. 50여년이 지난 지금도 국가의 부름을 받고 이국 땅에서 죽어간 동료, 선배를 가슴으로 잊지 않는 현지 분위기에 큰 감명을 받았다고 한다.

김씨보다 10살 어린 제시카 린치는 이라크군에 포로로 잡혔다가 구출된 뒤 전쟁 영웅이 된 미 여군 이등병이다. 유치원 교사가 되려는 꿈을 이루기 위해 고교 졸업후 자원 입대한 시골 처녀다. 참전 전까지만 해도 평범한 여군 이등병에 불과했다. 거의 벌거벗은 채로 남자 병사들과 장난치는 모습을 담은 사진도 있다고 하니, 세상물정 모르는 소녀나 다름없다.

그녀는 잠깐 적의 포로가 됐다가 풀려났더니 영웅이 돼 있었다. 총상을 입으면서까지 응사를 한 ‘여전사’로 돌변했고, 여성잡지 글래머로부터 ‘올해의 여성’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그러나 그녀는 최근 전기 ‘나도 군인이어요:제시카 린치 이야기’에서 자신을 영웅으로 만들려는 군 당국의 조치에 “마음이 불편했다”고 솔직히 털어놓았다. 전쟁 당시 추락한 군의 사기와 국민의 지지를 높이려는 정부와 군 당국에 의해 전혀 다른 인물로 조작됐다는 고백이다. 전쟁 목적에 이용된 것이다.

전쟁은 그 규모가 크든 작든 늘 희생자를 내기 마련이다. 서해교전에서 목숨을 바친 한 중사나 혼자 덩그러니 남게 된 김씨는 직접적인 희생자이고, 자신의 뜻이나 행동과는 달리 군의 사기 진작용 ‘모르모트’로 동원된 제시카도 엄밀히 말하면 희생자라고 할 수 있다.

희생자가 속출하는 그 전쟁터에 우리 젊은이들도 가야 할 모양이다. 일부는 총을 들고, 또 일부는 중장비를 몰고 험한 사막지대를 누벼야 할 운명인 듯하다. 서울에서 열린 한미연례안보협의회에서 우리 군의 이라크 파병 규모가 최종 조율돼 대략 3,000명쯤은 된다고 한다. 12월 정기국회에서 파병안이 통과되면 우리 젊은이들은 일정 기간 교육 및 훈련을 거쳐 현지로 파견된다. 그 시기는 내년 2월, 아니면 4~5월쯤이라고 한다.

파병 부대의 명칭이야 이라크 재건군이든, 평화유지군이든, 다국적군이든 상관없다. 중요한 것은 이탈리아군과 폴란드군이 후세인 정권과 직접 전투를 벌이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단지 이라크에 주둔하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테러의 목표가 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우리 젊은이들이 어떤 목적으로, 또 어느 지역에 주둔하든 침략군(?)을 겨냥한 이라크측의 테러로부터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미국은 벌써 무차별 테러에 견디다 못해 당초의 이라크 점령 계획을 수정, 이라크 주권을 서둘러 과도정부에 넘기기로 한 판이다. 미국 언론도 ‘이라크 주권 이양 이후’를 다루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우리도 이쯤에서 ‘파병 이후’를 염두에 둔 이라크 파병 전략을 짜야 하지 않을까 싶다. 미국이 이라크 주권을 서둘러 이양한 뒤 철군 계획을 짤 때 우리 젊은이들은 어디에서 어떤 일을 하고 있을지, 또 이라크 과도정부 수립 후 미군과 함께 철군이 가능할 것인지, 독자적으로 작전권을 행사할 경우 미군 철수 후에도 치안유지 병력으로 남아야 하는 것은 아닌지 등등을 사전에 검토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 머나먼 이국 땅에서 싸늘한 주검으로 돌아오는 젊은이를 줄일 수 있다. 그것은 제2, 제3의 김종선씨가 나오는 것을 막는 길이기도 하다. 우리에겐 100명의 제시카 보다 김종선씨 한명의 삶이 더욱 중요하다.

이진희 부장


입력시간 : 2003-11-19 15:05


이진희 부장 jinh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