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의 눈] '오다'형 리더십으로는 안된다


오랫동안 일본인의 혼을 사로잡은 지도자는 두 사람이다. 16세기 전국시대에 탁월한 지도력으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무장, 도쿠가와 이에야스와 오다 노부나가다.

다른 가문의 인질로 세상살이를 시작한 도쿠가와는 맏아들을 자기 손으로 죽이는 등 고난의 세월을 견뎌낸 덕에 ‘천하통일’의 대업을 이룬 인물이다. 그 과정이 대하소설 ‘대망’에 생생히 그려지는데, 전편에 흐르는 도쿠가와의 리더십은 절제와 인내, 치밀한 합리성을 바탕에 깔고 있다.

처세술에도 뛰어났지만 민심을 파악하고 조직을 관리하는 능력 또한 출중해 후대에 “부하는 인연으로 묶어서도, 비위를 맞춰서도 안 되고, 멀리해서도, 너무 가까이 해서도 안 되고, 위압적이어서도, 그렇다고 방심해서도 안 된다”는 경구를 남겼다.

나이 스물일곱에 전국통일의 뜻을 세우고 군사를 일으킨 오다 노부나가는 대업을 눈앞에 두고 부하에게 살해된 불운의 주인공이다. 도전적이고, 공격적인 그는 조직내 엄격한 규율을 바탕으로 리더십을 발휘했다. 군웅과 천하를 다툴 때는 파격적인 전략과 ‘깜짝’ 아이디어를 종횡으로 구사해 세상을 뒤집어 놓았다.

그의 일대기는 90년대 일본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끈 대하소설 ‘하천은 꿈인가’ 로 정리됐고, 오다의 리더십은 일본 경제의 거품붕괴 과정에서 큰 주목을 받았다.

거의 동 시대를 산 두 사람의 리더십은 확연히 다르다. 간단하게 말하면 이렇다. “울지 않는 새를 어떻게 울게 할 것인가”라고 물으면 도쿠가와는 “울 때까지 기다리겠다”고 답하는 타입이고, 오다는 “울지 않으면 죽여버리겠다”는 인물이다.

기회를 엿보며 때를 기다리는 도쿠가와형 리더십이 여전히 인기가 높지만, 거품경제가 붕괴하면서 심리적 공항상태에 빠졌던 90년대 초 일본에서는 과감하게 난세를 헤쳐나가는 오다형 리더십이 각광을 받았다. 목표를 세우면 무슨 일이 있더라도 달성하고 마는 불도저형 지도자가 필요하다는 게 시대적 요구였다.

노무현 대통령이 최근 국회가 통과시킨 측근 비리 의혹에 관한 특검법에 거부권을 행사하면서 한나라당 최병렬 대표가 사생결단식 단식투쟁에 들어갔다. 두 사람 모두 한치도 물러날 수 없다는 ‘고집’과 ‘오기’로 정국을 벼랑 끝으로 몰고 있다. 살벌한 대치 정국에서 정치권 특유의 유연성과 타협은 찾아볼 수 없다. 국정을 책임진 사람들이 리더십을 발휘해 나라 안팎의 어려움을 헤쳐나가기는커녕 무리수만 두고 있는 비난이 거세다.

두 사람은 꼬일대로 꼬인 특검 정국을 풀어가는데 오다 방식을 선호하는 듯하다. ‘울지 않는 새는 죽여버리겠다’는 의지가 굳은 얼굴에서 엿보인다. 정치 입문 후 결코 쉽지 않는 인고의 길을 걸으면서 순간순간 승부수로 ‘3김’이후의 전국시대를 통일한 노 대통령은 400여년 전의 도쿠가와를 연상시키지만 리더십에서는 그를 따르지 못한다. 느긋하게 때를 기다릴 법도 한데, 성급하게 도덕성과 개혁을 외치다가 자충수를 두곤 한다.

최 대표는 전형적인 오다형 리더다. 언론계, 정ㆍ관계 경력을 보면 도전적이고, 기회를 잡았다 싶으면 강하게 밀어붙이는 타입이다. ‘최틀러’라는 별명은 그래서 나왔다. 그러나 오다의 과감함은 성공으로 가는 지름길이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허물어지는 원인이 됐다는 지적을 최 대표는 새겨들어야 한다.

국가를 경영하는 리더십은 시대와 환경에 따라 달라지기 마련이다. 21세기 정보화 시대에 필요한 리더십은 다양하게 분출되는 국민의 뜻과 시대 흐름, 역사의 발전 방향을 정확하게 짚어내고 이를 구현하는 힘이 아닐까? 그렇다면 오다형 리더십은 오늘날의 시대 정신에는 맞지 않는다.

그 대안이 될만한 리더십으로는 최근 주목받는 서번트 리더십이 있다. 말 그대로 상대를 ‘섬기는’ 리더십이다. 서번트 리더는 아랫사람에게 명령하지 않는다. 머리카락이 부족한 사람에게 빗대신 모자를 건네는, 상대의 마음을 읽는 리더십이다. 경영컨설턴트 알렉산더 버리디는 ‘서번트 리더십의 조건’이란 책에서 인터넷 검색엔진 야후를 만든 제리 양과 데이비드 파일로를 서번트 리더로 꼽았다. 많은 사람들을 위해 효과적으로 인터넷을 검색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겠다는 마음가짐이 바로 서번트 리더십의 핵심이라는 것이다.

노 대통령도 잠시 서번트 리더십을 발휘하는 듯했다. 인터넷으로 2030의 표심을 사로잡고, 노사모로 ‘노짱’ 바람을 일으킬 때, 또 국민의 뜻을 국정에 반영하는 참여수석실을 도입할 때, 우리는 새로운 리더십을 체험했다. 하지만 그걸로 끝이었다. 재신임 정국에 이어 특검정국이 시작되면서 노 대통령은 DJ 정권 말기의 ‘오기 정치’로 되돌아갔다.

국민 다수가 지지하는 측근 비리 특검을 대통령의 권한이라는 이유로 거부한 것은 오다형 ‘밀어붙이기 정치’, 즉 시대에 뒤떨어진 리더십의 전형이다. 오다형 리더십을 서번트 리더십으로 바꾸어야 국민의 지지를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이진희 부장


입력시간 : 2003-12-03 11:05


이진희 부장 jinh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