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을 접으며] 금융정책 차분히 재점검해야 할 때다


“허 참, 답답하긴. 자본에 국적이 어디 있어? 자본은 똑같은 자본일 뿐이야. 오히려 금융 시장 개방은 국내에 선진 금융 기법을 도입할 수 있는 절호의 계기가 될 거라고.” 외국 거대 자본이 국내 금융 시장을 잠식할 것이라는 우려에 대해 경제 부처 한 고위 당국자는 몇 번이고 같은 말을 되풀이 했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단 1원이라도 높은 가격을 제시하는 곳에 상품을 파는 게 당연하다는 주장이었다. 이는 외환 위기 이후 정부의 일관된 정책이기도 했다.

헌데 그 기조가 바뀐 것일까. 정부는 12월 6일 개최한 경제 장관 간담회에서 국내 금융 기관에 투자할 국내 자본을 육성하기 위해 사모 주식 투자 펀드를 활성화하는 방안을 마련키로 결정했다. 장기로 자금을 조달해 전문적으로 기업 주식과 경영권에 투자를 할 수 있는 길을 소수의 고액 투자자에게 열어 줌으로써, 결과적으로는 분산된 국내 자본이 외국 자본에 대항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재정경제부 당국자의 설명은 이러했다. “외국 자본이 단기 수익만 추구하고 있어 금융 정책의 실효성이 급격히 저하하고 있다. 또 금융 전반의 시스템 리스크도 높아졌다.” 자본에 국적이 있을 수 없다는, 그러므로 금융 시장 개방은 금융 선진화를 가져 올 것이라던 애초의 논리를 스스로 뒤엎은 것이었다.

하지만 정부 내부에서 조차 아직 정책 조율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듯 싶다. 지금도 상당수 관료들은 금융 시장 개방을 대세라고 주장한다. 이번처럼 공감대도 충분히 이뤄지지 못 한 채, 사모 펀드 지원 방안이 모락모락 오르는 것은 점점 거세지는 여론의 반발을 어물쩍 잠재우기 위한 미봉책 정도로 여겨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환경에 따라 정책도 변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이는 장기적인 안목과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됐을 때의 얘기다. 외국 자본의 ‘침입’이 결국 국내 금융 시장을 붕괴시킬 것이라는 우려에 대해 내내 코웃음을 치던 정부가 이제 와서 갑자기 대항 자본을 만들겠다고 나서는 것은 이해하기 힘들다.

외환 위기 이후 6년이 흘렀다. 금융시장 개방은 물론 금융기관 대형화 등 외환 위기 이후 정부가 지금껏 초지일관 밀어 부쳤던 금융 정책을 이제는 차분하게 재점검해봐야 한다. 과거 정부 정책의 과오를 따지자는 것이 아니다. 일방통행식 여론몰이나 정책에서 벗어나, 현재 환경에서 최선의 정책은 무엇인지 온 국민이 머리를 맞대고 진지하게 검토해 보자는 얘기다.

이영태기자


입력시간 : 2003-12-10 09:54


이영태기자 yt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