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은 '생존 본능' 깨달은 감상적 인간

[어제와오늘]2004년의 김정일
김정일은 '생존 본능' 깨달은 감상적 인간

갑신 새해 2004년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은 어떤 인물로 세계 언론에 떠오를까.

지난해 초에 세계적인 주간지 이코노미스트, 타임, 뉴스위크는 커버스토리로 그를 다뤘다. 특히 뉴스위크는 그를 ‘악(惡)의 박사’라고 그를 평했다.

그 후 1년이 지난 12월 19일자에 타임은 그를 ‘2003년 전세계 뉴스 중심이 되었던 인물 15인’에 그를 올렸다. “미국은 후세인 처리 때와는 달리 지금 외교적 방법을 통해 북한 핵포기를 설득하고 있지만 그가 미국의 사찰단을 쉽사리 환영할 인물은 아닌 것 같다”고 평가했다.

이례적으로 중국 관영 신화통신은 그를 ‘2003년 국제풍운 인물’4위에 올렸다. 선정 이유는 “북한의 안전 보장을 확보하기위해 핵무기 프로그램을 지렛대로 활용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조총련이 발행하는 조선신보가 북한의 언론인, 외국인, 평양 시민 등의 의견을 모아 선정한 평양시민 선정 2003년 10대 뉴스에서도 그는 톱에 올랐다. ▦ 김정일 국방위원장 추대 ▦ 정권 창건 55돌 ▦ 북미 핵공방전 ▦ 북남교류 활성화 ▦ 전승 50돌 ▦ 대일본 과거청산촉구 등등이 뒤를 이었다.

조선신보는 “평양 시민들은 2003년을 돌이켜 보며 군(軍)중시 노선의 정당성과 생활력을 말하곤 한다. 미국과의 치열한 핵 공방전과 이라크 전쟁 등 격동하는 국제정치 흐름은 시민들로 하여금 국방에 대한 자각을 일으키게 했다”고 해석했다.

지난해 그를 ‘악의 박사’라고 지칭한 뉴스위크는 ‘2004년 세계를 움직일 인물’ 13인에서그를 제외 했다. 왜 그랬을까. 해답을 얼마 전 나온 전 영국 더 타임스의 서울특파원으로 82년에 왔던 마이클 브린의 책에서 찾아본다.

브린은 82년~94년까지 주한 외국언론 기자들의 대표적인 서울외신기자클럽 회장을 지냈다. 이때는 광주 사태 이후 한국이 민주화를 향해가던 때. 그는 영국의 가디언, 미국의 워싱턴타임스를 옮겨가며 서울의 정치와 사회를 살폈다. 이를 모아 ‘한국인, 그들은 누구며, 무엇을 바라며, 그들의 미래는 어디에 있는가’를 98년에 276쪽짜리 책으로 냈다.

그는 89년에는 홍콩의 실업인으로 평양에 갔다. 그 후 94년 통일교의 첫 김일성 면담이 이뤄지는 4월에 82세를 맞는 ‘수령 김일성’와 워싱턴타임스의 간부로서 악수 했다. 그후 그는 서방국과 북한과의 교섭 과정에서 컨설턴트로 일했고, 97년 IMF 후 메리트 커뮤니케이션 부사장으로 한국을 알리는 홍보인이 됐다.

그가 처음 평양에 간 89년, 평양은 회색 아파트의 도시였지만 아파트의 쓰레기통에는 종이라고는 없었다. 있는 것은 못 먹는 배추껍질 뿐이었다. 평양에 머무르는 동안 북한측이 그의 일행을 안내한 곳은 어린이대궁전. 스코틀랜드 출신의 한 기자는 ‘아버지 수령님’을 부르는 세살박이 어린이들의 기계같은 몸짓과 소리를 듣고 자리를 뛰쳐 나갔다. 그 기자는 기다리는 차에서 머리를 감싼 채 말했다. “간첩으로 잡혀가도 할 수 없다. 저들과 똑같은 나이의 내 딸이 떠올라 도저히 자리를 함께 할 수 없었다.”

브린의 두번째 방북도 어설픈 것이었다. 94년 4월 수령 김일성을 20명이 채 안되는 통일교 대표단이 만났을 때다. 수령은 그 후 3개월이 못되어 세상을 떴다. 그때 수령은 벌써 사람을 구분하지 못할 정도였다. “위대한 나라에 온 것을 환영합니다”는 말로 모든 질문을 봉쇄했다. 마침내 통일교단 일행을 접견토록 주선한 재미 여자 사업가가 인사를 하러 마지막으로 나서자 수령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나갔다. 그때 벌써 수령은 위대한 수령이 아니었다.

브린이 이번에 쓴 책의 제목은 ‘김정일, 북한의 친애하는 지도자-그는 누구며, 그는 무엇을 바라고 있으며, 어떻게 대해야 하나’다. 그는 김정일 위원장을 7세 때 어머니를 잃은 아버지를 위대하게 모셔야, 김일성주의의 교주로 모셔야 후계자가 될 수 있음을 깨달은 생존력이 강한 ‘감상적 인간’으로 보고 있다. 살아 남기 위해 아버지를 위대한 수령으로, 사후에는 ‘영생의 주석’으로 모셨다.

그는 김 위원장을 케네디, 루즈벨트와 같은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지도자로 보았다. 북미 핵 공방전을 분석한 그는 결론 짓고 있다. “포괄적 합의(북의 핵 포기, 미국의 체제보장)은 실제적인 평화를 가져다 줄 것이다. 미국은 증명할 수 있는 핵확산 금지를 얻어 낼 수 있고 김정일은 체제를 보장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미국이 마음 속으로 바라는 체제보장이란 결국은 김정일의 퇴장이 될 것’이라는 말은 아직까지는 예견일 뿐이다. 그러한 행복한 날(김정일의 퇴장)이 오기까지 북한의 가난한 인민이 고통 당하는 것이 슬프다.

입력시간 : 2004-01-02 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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