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을 접으며] 성대한 시무식 뒤에는…


새해를 여는 기업들의 시무식은 성대했다. 삼성은 신라호텔에서, SK는 쉐라톤 워커힐호텔에서 ‘새 출발’의 의미를 강조하며 엄숙하게 거행됐다. 올해 경영목표로는 주로 ‘글로벌화’ ‘일류기업’ ‘지속성장’ ‘위기관리’ 등이 강조됐다. 표현은 각기 다르지만 그 방향은 ‘성장’이다. 사회와 고객, 주주를 배려하고 더불어 살아가는 ‘성장’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삼성은 ‘글로벌 일류기업의 구현’을 새해 목표로 정했다. 지난해 글로벌 경쟁력 확보에서 한 단계 더 나가 세계 초일류 기업으로 도약을 위한 토대를 마련하는데 역량을 집중하겠다는 뜻이다. 이를 위해 세계시장 1등 제품군을 확대하고 미래 신소재 발굴에 적극 나설 계획이다.

LG의 경영 화두는 ‘글로벌 경쟁력 확보’다. 글로벌 시장에서 LG의 1등 사업 기반을 확고하게 구축하자는 것. 연구개발과 투자, 마케팅 전략 등 각 부문을 글로벌 수준까지 끌어올린다는 실천전략을 세웠다.

현대자동차 그룹은 ‘지속성장 가능 경영’을 경영의 새 화두로 설정했다. 단순한 이윤추구를 너머 환경보호와 사회공헌에 역점을 두고 기업 투명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투자를 활성화하기로 했다.

SK그룹은 경영 목표로 ‘그룹 정상화와 성장동력 확충을 통한 발전’을 잡았다. SK㈜에 대한 SK텔레콤의 지원이 불가피한 상황에서 각 계열사의 주주들이 납득할 만한 지배구조 구축을 위해 이사회 중심의 계열사별 책임경영을 강화할 방침이다.

그러나 기업들의 이 같은 경영목표가 새해 벽두부터 삐걱거릴 전망이다. 대선 불법자금에 대한 검찰의 수사가 재개되면서 그룹 총수와 최고경영자(CEO) 등 고위 경영진이 줄줄이 검찰에 소환될 게 뻔하기 때문이다. 한 그룹 임원은 “그룹 총수의 검찰 소환 장면 하나만으로도 반(反) 기업 정서 확산과 신뢰하락은 불 보듯 뻔하다”며 “연말에 활기차게 전개했던 나눔 경영이 수포로 돌아갈 것 같다”고 아쉬워했다.

더욱 큰 문제는 만에 하나 검찰 수사로 경영 체제 자체가 흔들릴 경우다. 그룹 총수에 대한 검찰 소환이 곧바로 사법처리로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어 화려한 경영목표 뒤에서 속앓이가 심한 기업도 있다. 한 임원은 “총수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한국 기업의 특수성을 감안할 때 경영체제 자체가 위협받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또 비자금 조성을 위한 분식회계 문제까지 불거질 경우 재계는 연초부터 주주 소송 문제에 휩싸일 수 있다. 그룹 인사나 신년 사업계획 수립 등 연초에 마무리해야 하는 각종 경영 현안들이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다.

기업들의 시무식은 성대했지만 내부적으로는 여전히 살얼음판을 걷는 분위기다. 새해치고는 우울한 시작이다.

장학만 기자


입력시간 : 2004-01-07 21:18


장학만 기자 local@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