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을 접으며] 나눔을 다시 생각한다


‘나눔’이라는 울림을 신년 벽두에 듣는다. ‘나눔 경영’을 화두로 내세우는 기업들에 질세라, 광고도 ‘사랑과 희망’으로 변신을 시도중이다.

지난해 “ 부~자 되세요”라는 말로 온 나라를 ‘ 부자 신드롬’으로 들끓게 했던 BC카드의 카피를 기억한다. 2003년 덕담 인기 목록 0순위는 “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가 아니라, 단연 “ 부자 되세요”였다. 그 같은 세태의 변천을 에누리 없이 반영한 말이었다. 불황에 허덕이던 국민들에게 이처럼 가슴에 와 닿는 기원은 없었던 때문이었을까.

그러나 날로 얇아져 가는 사람들의 주머니 사정을 비웃기라도 하듯, 실제로 부자가 되 것은 카드 회사와 광고 모델밖에 없다는 씁쓸한 후문만 남겼다. 사정을 모를 리 없는 회사측은 최근 문구를 바꾸고는 “ 부자되라는 말보다 행복하라는 덕담이 넓은 의미에서 더 따뜻한 세상을 만든다는데 일조한다는 생각”이라며 밝혔다. 그런데 왜일까, 바뀐 카피는 한층 불투명해진 우리 사회를 역설적으로 증명해 주는 것만 같으니. “ 행복하세요. 제발 부탁이에요.”

상처 없는 삶이 어디 있으랴. 날로 악화돼 가는 경제적 사정에 발맞추기라도 하듯 이혼 등 가정 파괴 양상의 속도는 가히 세계 수준급이다. 21세기 한국은 낫기도 전에 상처가 덧나고 있다. 과연 이런 사회에 미래가 있을까? 그러나 우리는 그 같은 성마른 회의에 대해 ‘아니다, 그렇지 않다’라고 깊고 낮은 목소리로 말하는 사람들이 있음을 안다.

주간한국이 신년을 맞아 기획한 ‘ 나눔 시리즈’는 이 같이 ‘나 혼자만 잘 살겠다’고 발버둥치는 현실에서 벗어 나, 이웃을 생각하고 보듬는 계기가 됐으면 하는 취지다. “ 가슴으로 낳은 아이”라며 장애아를 입양해 헌신적으로 키우는 ‘ 세진이 엄마’ 양정숙 씨나 재활용 쓰레기를 모아 60명 가까운 장애인들의 보금자리를 꾸려가는 김태회 원장의 삶이 감동적인 것은 이처럼 나보다 ‘ 우리’를 먼저 생각하는 나눔의 정신 때문이다.

나눔은 새로움의 정신이다. 축적으로만 내모는 자본주의의 탐욕에 치인 우리를 한 번 되돌아 보고 갱신하게 하는 소중한 계기다. 나눠 줄 게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나눔을 실천하는 이웃들을 통해 인간의 온기라도 다운 로드 받아 가시길 소망해 본다. 더더욱 다행스러운 것은 그들 모두는 지금 이 나라 정객들이 펼쳐 보이는 배신과 분열의 행태와는 정반대의 풍경을 그려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독자 여러분의 관심과 채찍을 기대한다.

배현정 기자


입력시간 : 2004-01-13 20:39


배현정 기자 hjba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