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와 오늘] 시민사회와 총선 시민연대


"시민단체가 정치세력화를 지향하기 보다는 사회세력으로서 힘을 가져야 한다. 물론 일분는 정치세력화 할 수 있지만 시민운동의 본류로서 시민사회적 기반을 가져야 한다."

‘2004 총선시민연대’가 2월 5일 공천 반대자 명단을 발표한 것에 대해 한국일보를 비롯 9개 전국지가 반대 의사를 사설에 썼다. 한겨레신문 만이 “정당들은 ‘낙천 대상자’ 공천 말아야”라고 찬성했다.

2000년 4ㆍ13, 16대 총선에 앞서 ‘총선시민연대’는 86명의 낙선 대상자를 발표, 이중 70명이 떨어졌다. 이 선거에서 한나라당은 38.9% 득표로 제1당이 됐다. 새천년민주당은 35.8%로 제2당이 됐다. 그래선지 이번 4ㆍ15 17대 총선에서 20명의 낙천 대상자를 낸 민주당의 충격은 대단했다.

민주당 강운태 사무총장은 6일 명단을 전하러 온 총선시민연대 대표와 설전을 벌였다. “야당에서 권력의 품으로 찾아 간 것은 철새 아니냐. 한화갑 대표가 경선자금으로 지적됐다면 왜 정동영 의장은 빠졌느냐”고 따졌다. 이에 대해 김기식 공동집행위원장은 “낙천 대상자에 안 뽑혔다고 면죄부를 준 게 아니다. 우리도 낙천자를 고르기가 쉽지 않았다. 18대 선거 때는 안하고 싶다”고 했다. 같이 갔던 서주원 환경연대 사무총장은 형평성을 잃었다는 민주당의 계속되는 지적에 고성으로 반발 했다. “우리는 논쟁하러 온 게 아니다. 우리를 타이르지 말라.”

이런 논쟁에 대해 한국전쟁에 대해 수정주의적 입장을 갖고있는 브루스 커밍스 교수(시카고대. ‘한국현대사’저자)와 찰스 암스트롱 교수(콜럼비아대 한국문제연구소장. ‘1945~50년 북한의 혁명’저자)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자문해봤다. 두 교수는 지난 대선이 한창일 때인 2002년 11월께 ‘한국사회-시민사회, 민주주의와 국가’ 라는 책을 엮어냈다.

DJ 정부에서 정책기획위원장을 지냈던 고려대 아시아 문제연구소장인 최장집 교수는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를 책으로 냈다. 최 교수는 서울대 사회학과 임현진 교수와 ‘20대 보수와 50대 진보가 만나는 공간’이란 캐치프레이즈를 달고 출범한 인터넷신문 ‘업 코리아’에서 지난해 12월8일, 11일에 “한국 민주주의, 어디까지 왔나”라는 대담을 했다. 최, 임 두 교수는 이번 총선시민연대의 결정에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도 또한 궁금해졌다

네 교수는 모두 민주주의라는 한 바퀴 속에 시민사회는 한 축이요, 국가라는 다른 한 축임에는 의견이 같다. 시민사회라는 축의 개념이 서구적이건, 또는 미국적인 민주주의 이념과 가깝거나 멀건 간에, 국가가 중앙집권화 하거나 권위주의가 되건 간에 시민사회는 그에 반(反)하는 한바퀴라는 데는 뜻을 함께 한다. 또한 시민사회가 개인과 가족들, 이웃들과 함께 벌이는 시민운동, 참여연대운동이 민주주의, 특히 한국 민주주의 발전에 큰 기여를 하고 있다고 보는 것도 같다.

1967년 평화봉사 단원으로 한국에 온 커밍스 교수는 박정희 대통령의 3선 개헌의 뿌리를 찾으면서 한국 민주주의의 모습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는 1960년 4월~1961년 5월까지의 제2 공화국에서 한국 시민사회가 자유주의적 민주주의로 만개했다고 느꼈다. “그때 한국은 국민소득 대 대학생수에서 영국을 능가했고, 세계 최다의 신문독자 국가였으며, 파리처럼 행정, 상업, 교육, 산업의 에너지가 국민소득에 비해 집중된 나라였다.”

그는 전두환 정부를 박정희의 아들 정권으로 표현했다. 노태우 정부는 그의 사촌정권. 1985년 2월의 12대 총선에서부터 시민사회가 움직이기 시작해 84.6%의 투표율(81년 11대에는 78.4%)속에 민주정의당은 35.2%, 새로 나온 신한민주당은 29.3%, 야당이던 민주 한국당은 19.7%을 득표해 야당이 여당을 눌렀다. 이어 87년 6월 항쟁은 스스로 조직된 독립적인 시민운동이 중산층의 참가 속에 민주주의의 한바퀴를 앞서가게 한 한국 역사의 ‘획기적 사건’이 됐다.

최장집 교수는 87년 6월 이후에야 한국의 민주화는 이뤄졌고, 그래서 그의 책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는 87년 6월 이후를 전하는 것이다. “한국의 시민사회는 공익창출의 안정적 기반으로 기능하지 못하고 있으며, 그에 따라 한국민주주의 위기는 가속화하고 있다. 이념의 다양화가 이루어 지지 않고있다”고 걱정했다. 그는 정확하게 지적하지는 않았지만 “시민단체들간의 갈등은 민주주의의 위대한 엔진이다. 총선시민연대는 너무 편협적이지 않느냐. 2000년 총선시민연대 같은 정치개혁을 다시 조직할 수 있게 된다면 선거 제도개혁등에 힘써야 할 痼甄蔑┛?권고 하고있다.

그와 대담을 나눈 임현진 교수는 시민사회가 벌일 운동 방향에 대해 차분히 권하고 있다.

“자본주의는 시민사회없이 가능하지만 민주주의는 시민사회없이 불가능하다. 여기서 시민사회란 바로 사람들이 자유롭게 자신의 생각, 신념, 사상을 교류할수 있는 공론장(公論場)을 말한?” “우리 시민사회는 질적으로 양적으로 괄목할 만하게 성장했다. 하지만 국민들의 다양한 이해 관계를 반영하는데 더 노력해야 한다. 시민단체가 정치세력화를 지향하기 보다는 사회세력으로서 힘을 가져야 한다. 물론 일부는 정치세력화 할 수 있지만 시민운동의 본류로서 시민사회적 기반을 가져야 한다.”

그렇다. 갈등이 분출하고 여러 생각이 교류되는 공론장이 있어야 시민사회는 성장하고 민주주의는 큰다. 2008년 4월 18대 총선에 낙선 운동을 접기 전 총선시민연대는 앞서 말한 네 교수를 모시고 시민사회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을 말하는 공론장을 만들어야 한다.

입력시간 : 2004-02-12 1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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