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을 접으며] 돈 벌이에 눈먼 치졸한 옷벗기


탤런트 이승연(36)이 역사를 들쑤셨다. 누구도 예상할 수 없었던 카드, ‘종군위안부 누드’를 내밀었다. ‘더 이상의 누드는 없다’던 홍보 자료의 문구는 그들의 운명을 예고한 말이 되고 말았다.

2월 12일 오전 서울 신라호텔에서 기자회견을 열 당시에만 해도 이승연은 ‘큰 일’을 해낸 듯 의기양양한 모습이었다. “군대 위안부 할머니들이 당했던 고통을 담아내기 위해 노력했을 뿐 그게 누드냐 아니냐는 마음에 두지 않았다”는 게 이승연의 주장 요지. 당당한 그녀를 향해 “얼마나 벗었냐”는 따위의 질문을 던지는 일부 언론이 민망할 정도였다.

영상 화보집 ‘여인’의 1차 촬영분인 ‘팔라우의 눈물’은 일본 제국주의의 희생양이 된 일본군위안부의 수난을 들춰내 한(恨)을 승화시킨다는 설명이었다. “객관적 촬영을 위해 2명의 사진 작가와 동행했지만 기획대로 안 나오면 다 덮으려 했다”, “하늘도 도왔는지 우기(雨期)였음에도 촬영지에는 비 한 방울 내리지 않았다”는 등의 촬영 뒷얘기를 당당히 꺼냈다. 또 “위안부 할머니들을 직접 뵙고 설명을 드리겠다. 그 분들의 문제 제기가 정당하다면 옳은 방향으로 조치를 취할 것”이라며 “진심이 통하리라 믿는다”고 거듭 강조하기도 했다.

그러나 안이한 예측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아픈 역사의 상처를 이용하려고 한 극악의 상술”이라는 비판의 봇물이었다. 당장 한국정신대문제 대책협의회와 한국여성민우회는 13일‘위안부 누드’에 대한 사진, 동영상 인터넷 서비스 제공 금지 가처분 신청을 법원에 내며 적극적인 반대 행동에 들어 갔다. 마침내 이 프로젝트를 진행한 ㈜네티앙엔터테인먼트는 16일 기자회견을 열어‘전면 중단’을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예술이냐 상업주의냐”, “애국심이냐 명예 훼손이냐”는 논란은 이제 무의미하다. 상처위에 소금은 뿌려지고 말았다. 벌건 대낮에 조롱받은 역사는 어떻게 스스로를 추스려갈 것인가.

배현정 기자


입력시간 : 2004-02-17 14:32


배현정 기자 hjba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