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을 접으며] YS 두 심복의 진실게임


1996년 김영삼(YS) 대통령의 집권 시절 여당인 신한국당이 안기부 예산 940억원을 총선 비용으로 전용했다는 ‘안풍(安風)’ 사건으로 YS의 심복이었던 강삼재 의원과 김기섭 전 안기부 운영차장이 ‘배신’과 ‘의리’의 상반된 길로 들어섰다. 강 의원은 YS를 ‘양아버지’ ‘정치적 대부’라고 부를 정도로 따랐고, 43세의 나이에 집권당 사무총장으로 발탁될 정도로 총애를 받았다. 김 전 처장은 모 호텔 상무에서 일약 안기부 차장까지 승진하면서 심복을 자처했다.

그러나 안풍 재판이 시작된 이후 4년 넘게 주군(YS)을 위해 한 길을 걸었던 두 심복은 지난해 9월 실형이 선고되면서 갈라설 조짐을 보였다. 그리고 지난 1월13일 강 의원의 변호인 정인봉 변호사가 “김영삼 전 대통령이 문제의 자금을 당시 사무총장이던 강 의원에게 직접 줬다”고 밝히고 강 의원이 2월6일 재판정에서 이를 확인함으로써 두 사람은 완전히 다른 길로 접어들었다. 2월27일 법정은 두 사람의 길이 얼마나 다르고,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 가를 확인시켜준 자리였다.

김 전 차장은 “자기가 살기 위해 남을 밟고 넘어가거나 배신하는 사람이 잘 되는 것을 보지 못했다”며 강 의원의 배신을 걸고 넘어졌다. 이에 강 의원은 “김 전 대통령에게서 돈을 받았다는 사실을 공개한 이후 때로는 ‘잘했다’고 생각했다가도 ‘사람의 도리가 아니다’는 마음에 고민하고 있다”며 “하지만 나는 인생의 스승을 배신해 거짓 진술을 하는 사람은 아니다. 지금도 내 행동은 정당했다고 생각한다”고 반박했다. 그는 ‘배신’이라는 두 글자에 무척 예민하게 반응했다. 6일의 재판에서도 “무덤까지 안고 가겠다고 말했지만 국민과 역사를 배신할 수는 없었다”고 진술한 뒤 기자들에게는 “내가 (YS를) 배신했다고 보지 말아달라”고 이해를 구했다. “정치적 신의와 인간적 의리도 중요하지만 (그런) 시대는 지났다”는 것이다.

두 사람의 진실게임은 오로지 ‘YS의 입’에 달렸다. 그러나 YS는 3월12일로 예정된 증인 소환을 거부했다. 강 의원과 김 전차장은 각각 국민과 역사에 대한 의리, 정치적 신의와 인간적 의리를 강조하고 있지만 국민의 눈엔 음습한 ‘생존 논리’ 밖에 비쳐지지 않는다.

박종진 기자


입력시간 : 2004-03-02 21:12


박종진 기자 jjpar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