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와 오늘] 바보 노무현과 최틀러


길다면 긴 취임 1주년을 맞은 ‘바보 노무현’대통령이 특별대담, 인터뷰 등을 2월14일부터 시작해 25일 출입기자 오찬간담회로 끝냈다. 노 대통령은 “오늘은 1주년을 기념하는 날이 아니라 2주년의 첫날이다. 털 건 털고 2년차는 좀더 편안히 갈 수 있으면 좋겠다. 자신을 변화시키는 능력 만큼은 자신이 있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자신 있다”는 말을 대여섯 차례나 했다. 노 대통령은 “과거에 훌륭한 대통령들이 있었지만, 다른 부분은 몰라도 자신을 변화시키는 능력만큼은 지지 않을 자신이 있다”고 또 ‘자신’이라는 말을 썼다.

이런 ‘자신’에 찬 노 대통령과는 달리 2월22일 기자회견에서 한나라당 최병렬 대표가 백의종군을 선언하는 모습에서는 자신감, 돌격성, 당의 장악력을 상징하는 ‘최틀러’의 이미지를 찾아 볼 수 없었다. 특히 한국 헌정사 중 최대 야당의 영수인 그가 밝힌 대안은 건전한 보수도 아닌 수구였다.

최 대표는 기자회견 앞머리에서 밝혔다. “지금 우리나라는 친북ㆍ반미 성향의 노무현 정권과 사회단체로 위장한 급진좌파들이 오는 4ㆍ15 총선에 승리하고자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대선자금 수사로 한나라당을 공격하고 그 결과로 건전 보수세력을 붕괴시키려는 획책에 혈안이 되어있다”고 했다.

“좌파가 대한민국을 접수하려 한다”는 발상에 대해 청와대는 “대응할 가치 조차 없다”, 민주당은 “한나라당 위기의 원인은 부정부패인데도 이를 제대로 보지 못하고 있다”, 열린우리당은 “한나라당의 자기개혁에 대한 진정성이 의심스럽다”고 각각 코멘트했다.

당원들 사이에서는 한나라당의 새 대표로 박근혜 의원에 이어 네 번째 후보에 오른 홍사덕 원내총무는 2월27일자 주요당직자회의서 노 대통령에 대해 한마디했다. “노 대통령은 독재자의 길로 가고 있다. 독립운동에 헌신했던 이승만 대통령 조차 독재자의 길로 가다 국민의 버림을 받았고, 가난을 구제한 박정희 대통령도 독재자의 길로 가다 버림 받았다. 노 대통령은 무엇을 했다고 독재자의 길을 걷나. 국민이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홍사덕 의원은 월간 신동아 16대 국회의원 인물사전 프로필에 의하면 “여야 정권이 교체됐음에도 한번도 여당의원을 해 본 적이 없는 특이한 케이스의 5선 의원, ‘현실과 이상을 헤매는 몽상가’라는 평도 있지만 ‘현실적 처신에 능하다’는 반론도 있다”는 평을 받았다.

둘 다 기자 출신인 최 대표나 홍 의원은 ‘현실’을 말해주는 노무현 정부에 대한 최근의 여론조사를 보지 않았거나 잘못 분석한 게 분명하다. 특히 한국일보 2월23일자, 2월24일자를 읽지 않은 게 분명하다. 제목만이라도 봤어야 했다.

최 대표가 친북ㆍ반미 정권이라고 한 노무현 정부는 한국일보 여론조사에서는 그렇지 않았다. 2002년 12월 실시한 여론조사와 비교하면 이번 조사에서는 여론이 보수화 하는 쪽으로 나타났다. 한미동맹 지지는 이번 조사에서 31.6%(2002년 20.4%), 자주외교는 19.7%(28.1%)로 한나라당의 우려와는 달리 보수쪽으로 기울었다. 주한미군의 경우 계속 주둔은 34.3%(27%)를 포함, 61.4%가 주둔에 찬성했다. 반미의 상징인 단계적 철수 또는 즉각 철수는 33.1%(44%)로 줄었다.

세대별로는 자주적 외교노선을 0으로, 한미동맹 강화를 10으로 했을 때 20대는 5.0인 중도, 30대는 4.9, 40대는 5.3, 50대는 6.0, 60대 이상은 6.7로 나타났다. 이라크 추가 파병에 대해서는 노 후보 지지층 출신은 찬성 76.8%, 반대 22.6%로, 권영길(權永吉) 민노당 대표 지지자는 찬성 20.1%로, 안정희구 세력화 되어갔다. 특히 한미관계라는 프리즘을 통해 본 중도보수화 경향은 최 대표가 말한 ‘건전 보수 세력’붕괴와는 전혀 다른 ‘우향우’로의 좌표 교정이었다.

경실련 고계현 정책실장은 “현 정부는 이념적 정체성이 없다. 현실 유지와 개혁 공약 가운데 우왕좌왕하다가 혼란만 가중했다”고 비판했다. 참여연대 김기식 사무처장은 “정체성이 변한 것인지 원래 그랬는데 착각한 것인지 모르지만 경제, 사회 복지, 외교 정책에서 보수화 경향은 뚜렷하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한 대답이 될는지 고건 국무총리는 취임 1주년 출입기자 오찬에서 “노 대통령이 1년 간 변한 것 같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주변에서 보는 시선이 안 그래서 그렇지 대통령은 원래 바탕에 실용주의적 사고를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바보 노무현’ 대통령은 25일 청와대 보좌관 부부들과 미역국 조찬을 하며 결론내렸다.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라면 불만은 개혁의 아버지”라고 스스로 만든 격언(?)을 말하며 어떤 변화에?대응할 자신감을 표현했다. 그는 바보일지는 몰라도 독재자는 아니다.

입력시간 : 2004-03-04 1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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