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생 마지막 작품 된 '경호권 발동'

[People] 박관용 국회의장
정치인생 마지막 작품 된 '경호권 발동'

“자업자득입니다…대한민국은 어떠한 일이 있어도 전진해야 합니다.”

거칠게 항의하는 열린우리당 의원들을 향해 그의 말은 이 같이 반복해 이어 졌다. 두 눈을 부릅 뜨고 입술을 굳게 깨문 그의 상기된 표정에는 단호함이 역력했다. 한ㆍ칠레 자유무역협정(FTA)안의 거듭된 표결 지연 당시에는 찾아 볼 수 없었던 또 다른 모습이었다.

노무현 대통령 탄핵안 표결 절차를 둘러 싸고 12일 여야가 대치한 극한 상황에서 국회법에 따른 ‘질서 유지권(경호권)’을 발동한 박관용 국회의장은 끝내 탄핵안 처리 강행을 감행하고야 말았다. 전두환 군사정권 시절인 1986년 마지막으로 사용됐던 경호권까지동원돼야 했을 상황이었다.

전날 밤까지만 해도 박 의장은 국회의 정상적 운용과 의원의 자유의사 표현이라는 이율 배반적 가치를 사이에 놓고 고심에 고심을 거듭했다. 국회의장실에서 밤을 꼬박 샌 박 의장은 탄핵 안 처리 이후의 여파를 고려, “어찌 할 꼬”라는 우려감 섞인 화두만을 되 뇌었다는 것이 의장실 관계자의 전언. 박 의장은 10일 대화가 거절되고 11일 대통령의 기자 회견을 지켜보면서 상황이 급박하고 불가피하게 한 쪽으로 기울어져가고 있다는 사실을 직감한것으로 보인다. 탄핵안 표결 직전, 박 의장은 마지막으로 청와대에 대화를 요청을 했다. 그러나 청와대로부터 ‘지쳤다’는 대화거절 최후 통고를 받은 후 그는 입술을 깨물었다. “정치는 대화와 타협의 예술인데….” 대화를 거부한 노 대통령의 결정은 상황 반전의 기회도 모색하지 않은 채 걷잡을 수 없는 부메랑이 되어 ‘자업자득’의 결과를 초래했다.

박 의장은 13일 한 라디오 프로그램과의 인터뷰에서 “질서 유지권을 발동한 것은 국민이 뽑은 국회의 다수 의견이 국민 여론의 다수라고 보는 민주주의적 대의정치의 관점에서 부득이한 조치였다”며 “제 일생을 살면서 가슴 아픈 오점이 될지도 모른다는 고통을 감수하고 있다”고 심정을 토로했다. 그는 “다만 어떤 상황에서도 대화의 노력을 게을리 하지말아야 한다는 민주주의 또 다른 기본정신을 다하지 못한 데 대해서는 다른 역사적 비판이 있을 수 있다”며 “그러나 투표나 질서 유지권 발동 등에 대한 적법성 여부에 대해서는 다른 비판이 있을 수 없다”고 단호함을 굽히지 않았다. 16대 국회를 끝으로 정계를 은퇴하는 박 의장의 당시 결단을 놓고 현재로서는 정파에 따라 평가가 엇갈리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앞으로도 두고두고,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이 다를 수 밖에 없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은, 평소 정치인의 명예를 강조해온 박 의장의 개인적 신념이다.

장학만 기자


입력시간 : 2004-03-17 20:47


장학만 기자 local@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