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와 오늘] 잃어버린 말


서울이나 워싱턴에서도 대통령과 후보자들의 언사가 문제로 떠올랐다. 서울에서는 탄핵 판결을 앞둔 노무현 대통령의 총선 이후 발언들에 찬반이 엇갈리고 있다. 워싱턴에서는 상원의원인 존 포보스 케리(J.F.K.) 민주당 대선 후보의 장황한 연설 솜씨가 부시를 재선케 할 것이라고 야단이다.

조선일보 4월 22일자의 첫 번째 사설은 ‘ 당혹스러운 대통령 발언들’이다. “ 열린우린당의 지도자이기에 앞서 국정의 최고 책임자인 노대통령이 총선 이후 처음 꺼낸 얘기들이 온통 정치와 선거뿐인 것처럼 전해지고 있는 상황은 결코 정상이라 할 수 없다.” “ 더욱이 노 대통령은 어느 쪽 잘못이 더 크든 선거 전 자신의 발언으로 인해 오늘의 사태가 있도록 한 당사자 중의 한 사람이다. 그렇다면 노 대통령과 국민들이 다시 만나는 첫 장면이 이런 식이어서는 곤란한 것이다”로 끝난다.

워싱턴에서는 워싱턴 포스트의 칼럼니스트인 리차드 코헨이 케리 후보가 ‘ 선거인들에게 전할 메시지를 읽고 있다’고 지적했다. 4월 20일 WP와 ABC공동 여론조사에서는 부시는 이라크 사태로 수백명의 미군 전사 속에서도 48%의 지지를 얻어 43%의 케리를 앞질렀다. 제 3의 후보인 랠프 레터는 6%를 얻었다.

코헨은 분석했다. “이런 결과는 케리가 투표자에게 투표자들에게 ‘케리에게 투표하시오…만가지 이유를 제치고 단 한가지, 케리는 부시가 아니다’라는 메시지를 전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의 말을 좀 더 들어 보자. “ 부시의 발언은 최소한 분명하다. 케리는 너무나 장황하다. 그가 말문을 열면 글로 써야 할 문장들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와 청중들은 어리둥절케 한다. 그는 문장이 문장을 잇는 글을 쓰는 데는 탁월하다. 그의 생각은 가득하지만 청중들을 지적 암울로 유도한다. 그는 아는 게 너무 많다. 그것이 부시와 차별화 될 수 없다.”

코헨은 충고 했다. “좀더 메시지를 분명하게 하고 도전적인 수사를 써라. 부시가 이라크 사태, 9ㆍ11청문회 등의 악재 속에 견뎌 낸 3월과 4월과 같은 상황이 계속되면 부시는 재선 한다.” 케리의 연설은 ‘생기 없고, 지루한’, ‘마침표 없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러기에 미국의 저명한 서평가들은 그를 ‘말보다 글을 쓰는 정치인’이라고 평했다.

1968~69년 베트남에서의 고속정의 병장으로 싸운 시기와, 71년 4월 상원 청문회에서 월남전 재향군인 반전 그룹 대표로 증언한 것, 82년 상원에의 당선까지의 공직에의 열망을 다룬 더글러스 브린크리의 ‘의무의 여로 – 존 케리와 베트남’(2004년 1월 펴냄)에는 그가 철학과 사상에도 밝은 문장가임을 증명해 준다. 미국의 역사에 대해 16권의 책을 쓴 뉴오리온대학 역사 교수며 아이젠 하워 연구소 소장인 브린크리는 “이 책은 내가 썼지만 케리가 집에 보낸 편지, 그의 일기, 근무 일지 등을 그의 전우와의 인터뷰 등을 짜집기 한 것이다. 이 책의 저자는 케리라고 해야 한다”고 자평했다.

그의 글솜씨 덕인지 모른다. 3월 17일 민주당 예선 마지막 화요일에 그는 후보로 지명됐다. 그것은 3월 1일 뉴욕 타임스에 기고한 글 ‘이런 군인의 이야기’ 덕분이기도 할 것이다. 그 이야기에는 그의 정치(精致 또는 精緻:정감을 일으키는 흥취) 가 있다. 그의 고등학교, 대학교 동기인 딕 퍼싱(1차 대전 때 미 원정군 사령관 퍼싱 장군의 손자), 그의 고속정 훈련 동기생인 돈 드로즈(해사 출신)의 월남전에서의 전사를 1천여자 속에서 인간적 모습을 생생하게 그렸다.

예를 들어 1968년 2월 16일, 구축함 그리드리호의 갑판사관으로 미드웨이 항에 있을 때의 일이다. 부함장이 “퍼싱이란 사람을 아느냐”며 전문을 주었다. “나는 공허한 울음(empty crtyng)을 자제해야만 했다. 나는 전문을 읽을 필요도 없었다. 내 어릴 적 친구면 대학 동문인 딕 퍼싱이 죽은 것이다. 며칠간 태평양은 그를 다시 볼 수 없다는 생각에 마음은 텅비었다. 그건 누구로도 대신 할 수 없는 이를 잃었다는 것이요, 무고한 이를 잃었다는 것이며, 불굴의 용기로 전쟁에 참가한 젊은 이들을 잃은 것이다.”그는 공허한 상실감을 시인처럼 읊었다. 그러다 69년 4월 갓 태어날 아이를 보지도 못 하고 전사한 어떤 중위의 소식을 듣자 “싸워서는 안 될 전쟁”이 됐다. 그 사건으로 그의 임무는 반전 운동이 된 것이다.

그는 71년 4월 베트남전을 다룬 폴 브라이트 청문회에서 조용히 결론 내렸다. “잘못 택한 전쟁으로 죽는 마지막 군인이 되라고 당신들(정치인)은 그래도 요구하 것인가”라는 반전론이었다. 앞서 그는 66년 예일대 졸업식장에서 베트남전에 대해 이렇게 비평했다. “1930년대 고립주의를 벗어난 미국의 외교 정책은 간섭주의로 변했다굔?요지였다. 의무로써 전쟁에 참여한 후 “베트남인들의 눈동자 속에는 자유를 지키겠다는 의지가 없다. 그들은 미국을 자유의 방해자로 본다”며 종전을 주장했다.

그의 문장은 살아 있다. 말은 엉성하다. 생각이 너무 많아서다. 이런 때에 중앙일보 4월 20일자에 실린 유태영 청와대 대변인의 ‘잃어버린 봄’이란 글이 떠올랐다. 대통령 직무정지 40일간을 쓴 것이다. 대통령이 직무정지 중 처음으로 마이크를 잡고 식목일날 한 말이다.

“헌충사를 가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정말 가 보고 싶어요. 그런 휼륭한 분하고 우리 처지를 비길 바는 아니지만 사람이 왜 그럴수록 우리가 더 감동 받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가고 싶은데, 못 갑니다. 그러니까 이게 유폐 생활이죠. 유폐 생활인데, 실감 납니다.” 노 대통령이 3월 12일 저녁 수석보좌관들과 만찬에서 했던 말로 이 ‘잃어버린 봄’은 끝난다. “정말, 무슨 운명이 이렇게 험하죠. 몇 걸음 가다가는 엎어지고…, 또 일어서서 몇 걸음 가는가 싶으면 다시 엎어지고…”

그가 ‘다시 엎어지지’않기 위해서는 말을 삼가고, 자괴감 깃든 글을 쓸 것을 권한다.

박용배 언론인


입력시간 : 2004-04-28 21:45


박용배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