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을 접으며] 직장상사 죽여 스트레스 풀자?


얼마 전 직장인을 대상으로 실시됐던 한 온라인 채용 정보 업체의 설문 조사 결과는 경기 불안과 고용 환경의 변화 때문에 요즘 직장인들이 느끼는 스트레스 지수가 나날이 높아지고 있는 현실을 잘 보여 주었다. 조사 대상 10명 가운데 9명이 “ 지난해보다 올해 스트레스를 더 많이 받고 있다”고 답했고, 스트레스의 주요 원인이 고용 불안과 연봉 불만족 등에서 비롯됐다는 결과가 나온 것이다.

이 조사를 진행했던 채용 정보 업체 사장은 “장기간 불안한 경기가 계속됨에 따라 직장인들이 느끼는 고용 불안이나 경제적 압박감이 높아 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풀이했다. 이에 따라 IMF 이후 한 동안 주춤했던 해외 취업 붐도 다시 조성되는 추세다. 산업인력공단에 따르면, 지난해말 해외취업 희망자수는 전년에 비해 무려 98%나 증가했다.

“ 고용 시장의 승자는 없다?”, “ 살아남은 자의 슬픔” 처럼 비애를 담은 말들이 떠도는 때다. 이태백, 오륙도 등 취업에 실패한 이들의 얘기라고 치부하는 이들이 많겠지만, 몇 년 사이 직장인들 사이에서조차 뜻밖에도 이런 패배의 분위기가 짙게 드리워진 경우가 많다. ‘ 감원’이니 ‘ 감봉’이니 하는 회오리에 시달리면서, 무조건 회사의 요구대로 움직이는 무한용량의 노동 기계로 전락해가고 있다는 자조다. 그래서일까, ‘ 요즘 같이 어려운 시기에 실업자 신세 면한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하는가?’라는 물음이 고개를 든다.

이런 세태를 반영하듯 직장인 스트레스 해소를 전면에 내세운 엽기 게임들도 뜨고 있다. 사장을 때리고, 술 먹이고, 야근 시킨다는 내용의 ‘ 사장님 죽이기’ ‘ 직장 상사 때려잡기’ 등의 게임은 20~30 직장인들의 호응을 등에 업고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 사장님 죽이기’의 경우 하루 다운로드 받는 회수가 1,500여 건을 웃돈다고 한다. “ 재미있다”며 웃고 지나치기엔, 개운치 않은 뒷맛을 남기는 현상이 아닐 수 없다.

이처럼 직장인이 회사와 사장을 불신하는 시대가 되니, 업무 효율이 오를 리 없다는 게 더욱 큰 문제다. 최근 각 신문 경제면을 장식했듯, “ 직장인, 근무시간 중 4분의 1은 농땡이 친다”는 한 인재 파견 회사의 조사 결과는 암울한 현실의 이면을 단적으로 말해주는 듯 하다. 평생 직장 개념이 사라지면서 직장에 대한 충성도가 약해지는 풍토가 그렇게 반영된다. 개인과 회사가 공생하는 ‘윈윈’ 전략은 어디쯤 있을지….

배현정 기자


입력시간 : 2004-05-25 16:55


배현정 기자 hjba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