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을 접으며] 인터뷰가 남긴 것


얼마 전 사상 최초의 여자 부장검사를 만나러 갔다. 가는 도중 적잖이 긴장이 됐다. 검찰이라는 남성 전용(?) 지대에서 굳건하게 버티고 있는 ‘ 철의 여인’이라는 선입견 때문이었을까. 하지만 법무부 검찰국에서 만난 그는 예상과 전혀 딴 판이었다. “ 어서 오세요” 하며 자리에서 일어나 걸어 나오는 순간, 이웃집의 인심 좋은 아주머니처럼 느껴질 정도.

남성 중심 사회에의 여자라는 희소성 때문일까. 일터에서, 특히 ‘ 금녀의 구역’에서 성공한 여자를 만나는 자리에서 기자도 무의식의 검열을 받았던 모양이다. 같은 여자끼리도 예외는 아니라는 추론이 그래서 가능하다.

올해 처음으로 여검사 수가 세자리 숫자 시대를 열었다. 특히 신규 임용된 81명의 검사 중 여성이 21명. 4분의 1을 넘어선다. 이제 여자 검사라고 특별하게 바라보는 일은 옛 추억이 돼 가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아직 대중의 의식은 이를 뒤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지난 2월 신임 검사 임명식 때 찍은 기념 촬영 사진 한 장은 이러한 세태를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당시 신임 여검사들의 기념 촬영 사진이 매스컴을 통해 배포되자, 한 네티즌이 ‘얼짱 여검사’라는 제목으로 이 사진을 다시 퍼서 올렸던 것. 그는 여러 여검사 중 특정 한 명을 ‘얼짱’으로 점찍고, “탤런트 L양 닮았다”고 추켜 올렸다.

논란은 여기서부터 불거졌다. 네티즌들이 이에 발끈, 열을 올리며 줄줄이 답글을 단 것. “ 당신 군바리요? 개나 소나 얼짱이네”, “ 다들(여검사) 공부만이 살길이었겠군” , “오른쪽에서 **째, 개그맨 박명수 닮았네”. 숫제 한 판 미인 대회에 나온 후보 취급이었다.

여성 검사 시대가 열리고 있지만, 여전히 그들은 전문 직업인으로서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는 듯 하다. 인터뷰 시에도 여자로서 겪는 어려움을 묻고, 여자이기에 유리한 점을 질문 하는 게 현실이다. 언제쯤이면 그들의 직함 앞에서 ‘ 여’라는 수식어가 사라질까. 진정한 여성 검사 시대는 그때에야 이뤄지지 않을런지. 결국 사회의 통념을 답습한 형국이 돼 버렸다는 자괴감이 남아, 지금도 기자를 지켜 보고 있다.

배현정 기자


입력시간 : 2004-06-15 15:42


배현정 기자 hjba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