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와 오늘] 클린턴과 이청준


엉뚱한 비교인지도 모른다.

발간 4주째인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의 회고록 ‘ 마이 라이프’는 뉴욕타임스 논픽션 부분에서는 베스트셀러 1위다. 아마존 닷컴에서는 종합 9위다. 바다 건너 서울에서 그의 베이비 붐 세대와는 다른 전전 세대(1939년생) 소설가 이청준의 두 산문 수필집 ‘ 이청준의 인생’과 ‘ 아름다운 흉터’는 어느 신문이나 전자 판매망에서 베스트셀러 대열에도 차지하지 못했다.

미국 당대의 평전 작가이며 언론인 CNN회장과 타임의 편집국장을 지낸 월터 아이작선(‘ 벤자민 프랭클린’, ‘ 키신저’, ‘ 와이즈맨’의 작가)은 요약했다. “ 나이 들어가는 전후세대로서, 대단한 필력을 가진 이야기꾼이다. 그의 책 957쪽에는 탁월하고 의도적이지 않은 필체와 그 자신의 인격과 대통령직에 대해 쓰고 있다. 다소 환상적이고 잘 닦여지지 않았지만, 매우 지적이고 자기탐닉적이며 미래에 대해 확고한 신념을 갖게 한다.”

조선일보의 서평 기자인 김광일은 요약했다. “ 지난 40여년 동안 ‘ 유명한 만큼 대중적 인기가 없었던’ 이청준 문학은 깜깜한 현실 속을 걷고 있는 깨어있는 독자들에게는 그러한 든든한 역할을 해왔다.(중략)이번 책들은 어쩌면 앞으로 쓰게 될 기다란 자서전의 앞 토막과 꽁지 부분일 것이다. 유년 시절의 고향 이야기가 엮인 ‘ 아름다운…’이 앞 토막이라면 삶의 여정에서 중요 대목을 짚고 세상 풍물의 표정을 들여다 본 ‘ 이청준…’은 꽁지쯤이다. 그는 글로 마음을 훔치는 큰 도둑이며 이야기꾼이다.”

클린턴의 정치 인생 30여년은 세 살 적에 본 어머니 모습 표현에서 그 실마리가 시작된다. “ 나는 할머니와 함께 기차를 타고 뉴올리언스로 어머니를 두 번 찾아갔다. 밤에 도시의 불빛을 내다보면서 느꼈던 경외감이 지금도 기억난다. 뉴올리언스에서 어머니가 무엇을 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그 곳을 떠나려고 기차에 올라탔을 때 겪었던 일은 잊혀지지 않는다. 기차가 역에서 빠져 나오는데 어머니가 철길가에 무릎을 꿇고 앉아 손을 흔들며 울음을 터뜨렸다. 어머니가 무릎을 꿇고 울던 모습이 어제 일처럼 눈에 선하다.” 그의 어머니 버지니아 캐시디는 1943년 브라이서 포세와 결혼했으나 그는 참전했다. 종전후 45년5월 시카고에서 가구를 싣고 처가인 아칸소로 오던 중 교통사고로 죽었다. 마취 간호사였던 그녀는 남편 사후 4개월여 후 클린턴을 낳았다.

이청준의 기억의 시작은 여섯 살 때인 어느 봄날 세살배기 아우의 죽음, 이어 큰 형과 아버지의 죽음 등으로 인한 울음으로 시작된다. 홀어머니가 된 어머니에 대한 기억의 실마리는 시적이다. “ 파도가 반짝이는 바다를 돛배들이 느릿느릿 한가롭게 지나갔다. 어머니의 밭일은 그 돛배들이 몇 척씩 바다를 가로질러 반대편 산기슭 뒤로 모습을 숨겨가곤 하여도 좀처럼 끝이 나지 않았다. 어머니의 일곱마지기 밭이랑이 또 하나의 바다였다. 어머니는 그 여름 농사가 어우러진 밭이랑 사이를 한 척의 작은 돛배이듯 무한정 가물가물 떠돌고만 있었다. 어느새 서서히 이 쪽으로 다가들고 이제는 그만 허리를 펴고 밭이랑을 나오려나 싶으면 어느 틈에 다시 모습이 조그맣게 멀어져 가버리고…”

클린턴의 세 살 적 기억은 그의 ‘ 100여명 중 90명이 좋아하는’ 낙천성을 따라 급성장했다. 그는 고등학교 2학년 작문 시간에 100점을 받을 정도로 ‘ 너 자신을 알라’는 자기 고민, 자기 성찰을 할 만큼 자랐다. “ 나는 살아있는 역설이다. 매우 종교적이면서도 나의 구체적인 믿음들에 대해서는 마땅히 그래야 할 만큼 확신을 가지지 못하고 있다. 책임을 지고 싶으면서도 막상 그런 일이 생기면 움츠러든다. 진리를 오류에 굴복시키는 경우도 있다. …(중략)…나는 이기심을 혐오하지만 매일 거울에서 그것을 본다…(중략)…나라는 것은 얼마나 따분한 작은 단어냐. 나는, 나를, 나의, 나의 것…. 이런 단어들을 가치 있게 사용하게 해주는 것은 믿음, 신뢰, 책임, 회개, 지식 같은 단어다. 이것은 살아갈 의미를 찾게 해주는 것들로 결코 피해갈 수는 없다.”

이청준은 1965년 ‘ 퇴원’으로 문단에 등단했다. 그가 광주의 고등학교 2학년 때 자기에 대한 성찰을 얼마 만큼 했는지는 기록에 없다. 1967년 동인문학상, 69년 대한민국 문화예술상, 75년 ‘ 이어도’로 한국일보 창작문학상을 받은 후 고향을 둘러보고 느낀 자기 성찰이 있다. “ 유년의 땅에 와서는 많은 잃어버린 것을 되찾는다. 잃어버린 것 가운데서도 순수한 공포감 같은 것을 되찾게 된다. 수로에 잠겨 밤길을 따라오는 물 속의 달, 집 뒤안까지 검게 막아선 뒷산의 깊고 우뚝한 밤 그림자, 그런 것들은 공연히 나를 섬짓 섬짓 무서움에 떨게 한다. 무더운 여름 밤의 서늘한 바람기, 하늘에 가득 찬 밤별들과 별똥별, 시골 야밤의 광대 무변한 정적과 침묵…그런 것들도 공연히 나를 섬짓거리게 만든다. 까닭 없는 공포감, 까닭 없으니 공포감은 순수하다. 그러니 내가 이 유년의 땅에서 순수란 공포감을 되찾아가는 것은 내 잃어버린 옛날의 순수 자체는 되찾아가고 있는 것 한 가지인지 모른다.”

작가 이청준이 36세 때 느낀 ‘ 순수한 공포감’과 미래에 대통령이 될 18세의 클린턴이 ‘ 역설적인 나’ 속에서 얻어낸 ‘ 믿음, 신뢰, 책임, 회개, 지식’은 똑 같은 것이 아닐까. 같다면 엉뚱한 비교는 엉뚱하지 않은 것이다.

입력시간 : 2004-07-28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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