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을 접으며] 첫 여성 대법관의 의미


헌정사상 처음으로 여성 대법관이 탄생할 예정이다. 대법원은 8월 17일 퇴임하는 조무제 대법관의 후임으로 김영란(47) 대전고법 부장판사를 신임 대법관으로 23일 임명 제청했다. 국회 인사청문회와 동의 절차가 남아 있지만 김 부장판사에 대한 법조계의 평가나 발탁 배경으로 보아 임명이 확실시된다.

40대 여성 대법관의 등장은 두 가지 점에서 큰 의의가 있다. 먼저 40대 판사가 대법관 후보로 제청된 것은 88년 49세의 나이로 대법관이 된 김용준 전 대법관(헌법재판소장 역임) 이후 16년 만의 일이라는 점이다. 김 부장판사는 지난해 8월 임명된 김용담 대법관과 사시 기수가 무려 9회나 차이가 나, 법원의 견고한 서열의 벽이 무너질 전망이다. 당장 내년 최종영 대법원장등 6명의 대법관이 교체될 예정이어서 법원 주변에선 벌써부터 서열 붕괴에 대한 이런 저런 소리가 들린다. 지난해 40대의 강금실 법무부장관이 법조계 서열 원칙에 충격을 주었다면, 이번 김 부장판사의 대법관 발탁은 변화와 진보라는 시대 흐름이 가장 보수적인 집단으로 인식돼 온 있는 법조계 깊숙이 들어 왔음을 말해준다.

첫 여성 대법관에 담긴 메시지는 40대라는 젊음(?), 그 이상이다. ‘40대’란 시대의 외피와 횡단면을 가로지른다. 한편 ‘여성’에는 현대사의 내면, 즉 남성으로 상징돼 오던 불순한 종단면을 관통한 청량함이 가득하다. 대법원은 제청 이유에서 “법원 안팍에서 여성 및 소수자 보호의 적임자로 지목돼 왔고 실무에서 여성적 섬세함까지 갖췄다”며 짐짓 발탁의 탁월함을 으스댔지만, 뒤집으면 남성적 시각의 그늘이 배어 있음을 숨길 수는 없을 것이다.

김 부장판사가 남성과 서열의 벽에서 나오는 순간까지 법원 최상층부의 시각이 그러했으니 그의 20여년 판사생활이 어떠했는지는 자명하다. 김 부장판사는 경기여고와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1978년 20회 사법시험에 합격, 판사 생활을 시작해 대법원 재판연구관, 수원지법 부장판사, 사법연수원 교수,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 등 요직을 두루 거쳐 지난해 2월 대전고법 부장판사로 임명되기까지, 특히 여성과 소수자를 보호하는 판례를 잇따라 내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김 부장판사가 첫 여성 대법관에 오른 것은 남성으로부터의 시혜라기보다 한길을 꿋꿋이 걸어 온 데 대한 시대적 보은이자 기대로 여겨진다. 특히 김 부장판사의 남편은 청소년보호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한 강지원(54) 변호사인 점을 감안한다면, 사회의 소수자와 약자의 편에서 부부가 동반자의 길을 걸어온 셈이다.

대법관을 가리키는 Justice는 ‘정의’를 뜻한다. 여성으로 첫 대법관에 오른 김 부장판사에 대해 우리 사회가 거는 기대 역시 그 한 마디로 집약될 것이다.

박종진 기자


입력시간 : 2004-07-29 16:36


박종진 기자 jjpar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