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을 접으며] 염천 비웃는 샤갈전


연일 30도를 장난처럼 웃도는 염천 탓에 주말의 서울 도심은 텅텅 빈다. 문자 그대로 바캉스다. 이런 때면 사람은 36.5도의 발열체로 밖에 인식되지 않기 십상이다. 바로 이 때, 사람들이 기를 쓰고 몰려드는 곳이 있다.

평일에는 3,500여명이 찾고, 주말이면 하루에 5,000여명을 넘기기란 여반장(如反掌)이다. 고작해야 냉방 잘 된 대형 할인점에 가서 주머니를 털리고 오기 십상인 서울 사람들에게 1만원, 그야말로 단돈 1만원에 영혼의 양식을 무제한 공급하는 곳이 있다. 샤갈.

7월 15일 문을 연 이래 보름만에 5만명이 관람했다. 토요일인 7월 31일에는 인파를 주체할 수 없어 폐관 시간을 30분 늦췄더니, 6,000명을 훌쩍 넘는 기록까지 세웠다. 그들은 무엇을 보고, 또 무엇을 암시 받고 싶었을까. 아이들 손을 잡고, 연인의 어깨에 기대어, 또는 혼자서 사색하듯 초대형 캔버스 속의 이미지가 이끄는 대로 자신을 맡겨둔다. 샤갈.

‘도시 위에서’의 두 연인이 펼쳐 보이는 자유로운 비상(飛翔)은 아예 체질화돼 버린 경제 환란속을 헤쳐 나가고 있는 사람들에게 해방감으로 다가 온다. 갓난 아이를 안고 있는 ‘어부의 가족’ 속 인물들은 남루하지만 완벽한 평화의 이미지를 구현한다. 중세 프레스코 벽화를 현대화한 듯한 일련의 작품들은 21세기가 영성(靈性)으로부터 얼마나 멀어져 있는가를 새삼 일깨워 준다. 그것은 무엇보다 군림하려 들지 않으려 하는, 동시에 대중의 의식을 선도하는 예술만이 선사할 수 있는 즐거움이다.

2005년 2월부터 모스크바 전시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한국에서 전시될 것이라 하니, 보고 또 다시 찾는 사람들도 많겠다. 모두 1,100억(보험가 기준)에 달하는 걸작품 120여점을 원 스톱으로 확인한다는 다소 속물적인 감흥과 함께. 내친 김에 속물적 수치 하나 더. 그의 작품 중 최고가인 ‘도시 위에서’는 110억이라는데….

장병욱 차장


입력시간 : 2004-08-05 16:57


장병욱 차장 aj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