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린 오티, 손승모의 '올림픽 오딧세이'

[People] 신화의 땅 감동 시킨 불굴의 투혼
멀린 오티, 손승모의 '올림픽 오딧세이'

멀린 오티(왼쪽), 손승모

불굴의 투혼으로 ‘신화의 땅’을 달궜다. ‘비운의 흑진주’인 자메이카 출신 스프린터 멀린 오티(44ㆍ슬로베니아). 한때 세계를 주름 잡았으나 이제는 무대로 퇴장했을 법한 노장이, 국적을 바꿔가면서까지 생애 일곱번 째 올림픽을 노크했다.

2000년 시드니 올림픽까지 6차례 연속 올림픽에 참가해 8개의 메달(은3, 동5)을 수확했지만, 금을 놓친 한을 풀겠다며 육상 100m와 200m를 목표로 운동화 끈을 바짝 조였던 것. 그녀는 2002년 슬로베니아로 귀화해 아테네에서는 새 조국의 유니폼을 입고 트랙에 섰다. 불혹을 훌쩍 넘긴 오티는 “슬로베니아는 내가 25살이든, 44살이든 상관하지 않는다. 오로지 최선을 다해 뛸 수만 있으면 좋다”라며 나이가 무색한 역주를 다짐했다. 아쉽게도 세월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끝내 원했던 메달을 목에 거는 데는 실패했으나 그녀의 ‘젊은 정신’은 단연 아테네를 뜨겁게 달구었다.

주목 받는 사람은 또 있다. 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서 정식 종목으로 채택된 배드민턴 종목에서 한국 선수로는 처음으로 4강에 오른 손승모가 그 주인공. 그러나 ‘남자 단식 올림픽 사상 첫 4강 진출’, ‘남자 단식 첫 메달 획득.’ 이는 그가 주목 받는 이유 중의 하나일 뿐, 진짜 이유는 아니었다.

초등학교 때 친구의 권유로 배드민턴 라켓을 쥔 손승모. 고등학교 1학년 때 오른쪽 눈이 셔틀콕에 맞아 실명 위기에 처하고, 선수 생활은 물론 일생 일대의 위기를 맞는다. 그러나 이 같은 저주에 그는 무릎 꿇지않고 오히려 강한 정신력으로 무장했다. 기적처럼 각막 제공자가 나섰고, 이어 2001년 대교 눈높이컵에 등극하면서 그는 다시금 화려하게 부활했다. 그의 셔틀콕은 인생의 반란군이자 인간 승리의 동반자였던 셈이었다.

이후 순탄할 것 같았던 그의 셔틀콕 인생은 다시 한 번 시험을 받는다. 이번엔 아킬레스건. 한 번 손상된다면 모든 운동 선수들에게 치명타를 입히는 부분이다. 2002년 세계선수권대회에 출전했다가 오른쪽 발 아킬레스건을 다치게 된 뒤 병세가 악화, 염증까지 생기는 종골염으로 발전한 것이다. 사실 이번 올림픽 훈련 과정에서도 수시로 통증이 왔지만, 코칭 스태프에게 아프다는 말도 숨긴 채 정상을 향해 내달렸다. 한쪽 눈과 한쪽 발을 가지고 결승전에 올랐고, 마침내 은메달을 거머쥐었다.

메달을 땄건 아니건, 두 선수는 역경을 감내한 무서운 투혼으로 올림픽을 살려 냈다. 그들이 주목 받는 진짜 이유다.

배현정 기자


입력시간 : 2004-08-26 14:45


배현정 기자 hjba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