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ople] 꿈은 마비될 수 없었다

이원규 교사, 루게릭 병 투병하며 문학박사 학위

루게릭병으로 전신이 마비된 40대 고교 교사가 오른손 두 손가락만으로 공부를 계속해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화제의 주인공은 ‘한국 시의 고향의식 연구’로 8월 25일 성균관대에서 국문학박사 학위를 받은 서울 동성고 영어교사 이원규(43)씨. 이씨가 루게릭병에 걸린 사실을 안 것은 1999년 8월. 혀가 꼬이고 발음이 잘 안돼 이비인후과 치료를 받던 중 차도가 없자 대학병원에 갔다가 날벼락 같은 통보를 받았다.

정신은 멀쩡하지만 온몸이 마비돼 죽음에 이르게 된다는 의사의 무시무시한 설명에 이미 두 아이의 아버지였던 이씨는 눈앞이 캄캄해졌다. 그러나 그는 “내 젊은 날의 전부였던 문학에 대한 애정만큼은 버릴 수 없다”며 이듬해 9월 성균관대 국문학과 박사과정에 진학했다.

그러나 지난해 봄부터 병세는 급격히 악화됐고 잠자리에서 몸을 뒤척이는 것조차 힘들어지면서 이씨는 17년 동안 몸 담아온 학교에 휴직계를 내야 했다. 지난해 말에는 자료를 바닥에 펼쳐놓고 발가락으로 넘겨가며 공부해야 할 정도였다.

논문 작성 자체가 그에게 가혹한 일이었다. 유일하게 감각이 살아있는 오른손 검지와 중지만으로 마우스를 조작해야 했기 때문. 이씨는 “비장애인들 같으면 10분에 쓸 분량을 2~3시간씩 걸려 타이핑할 때는 그만두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다”며 “하지만 지금 포기하면 얼마 안 남은 인생이 온통 검은빛으로 변하고 만다고 생각하며 용기를 냈다”고 말했다. 그는 마침내 올해 봄 논문을 완성했다.

이씨는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해 부인 이희엽(41)씨의 ‘통역’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태이다. 이씨는 “내 입과 손, 발이 돼준 아내가 없었다면 논문은 없었을 것”이라며 모든 공을 부인에게 돌렸다.

그는 힘든 투병생활 와중에도 논문만큼이나 귀중한 또 하나의 일을 시작했다. 국내에 1,300여 명의 환자가 있지만 루게릭병은 여전히 생소하다. 일반인에게는 영국의 천체물리학자 스티븐 호킹이 루게릭병의 환자라는 정도가 알려져있을 뿐이다. 이씨는 루게릭병에 대한 정보와 치료법을 공유하기 위해 지난해 말부터 투병생활과 간병기 등을 나눌 수 있는 인터넷 홈페이지(www.alsfee.org)를 운영하고 있다.

그의 목표는 스티븐 호킹 같이 음성변환장치를 달고서라도 대학 강단에 서는 것. 학생들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라도 달려가 함께 호흡하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전성철 기자

입력시간 : 2004-09-02 16: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