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을 접으며] 패러디를 위하여


아테네 올림픽이 끝났다. 그리스 신화를 담았던 성화도 꺼졌다. 그러나 신화의 빛과 향기는 깊고도 멀리 간다. 영혼을 일깨우는 그리스 문화의 힘인 게다.

고대 그리스 시인의 한 사람인 히포낙스의 시에는 독특한 향이 있다. 쉽게 섞이지 않는, 투박하고 날카로운 향. 사회에 대한 풍자, 조롱이 그 생명력이었다. 사회가 사회일 수 있게 한 부정(否定)의 소통(疏通). 히포낙스는 바로 패러디의 시조다.

정치권에 때아닌 패러디 소동이다. 한나라당이 심혈(?)을 기울인 의원 연극이 말썽이다. 청와대는 감히 대통령을 건드렸다고 발끈했다.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에 대한 성적 비하 패러디로 곤혹을 치렀던 터라 반격은 거셌다. 우군인 열린우리당의 지원사격은 ‘지원’을 넘었다.

한나라당은 “연극은 연극일뿐”이라고 강변했지만, 더 많은 관객은 이 연극을 무대에서 끌어내려 도마 위에 올렸다. 연극이 아닌 폭력이라는 규탄이다.

패러디 홍수 시대, 그만큼 사회가 뒤틀렸다는 반증이다. 그러나 정치권의 패러디는 주객이 전도된 양상이다. 풍자와 조롱의 대상이 오히려 주인 행세하는. 수준도 패러디 고유의 타이틀을 달기엔 근시안적이고 원시적이다. 여유가 없으니 퍽퍽하고 뒷맛이 씁쓸하다.

참다 못한 관객이 도마 위의 연극에 소리쳤다. “의원 수십 명이 그런 연극을 만들고 연습을 할 시간이 있었으면 차라리 경제 살리기를 위해 민생 탐방이라도 했어야 하는 게 아닌가.”

서둘러 막을 내린 당이나 공연히 정쟁을 지피고 연장한 당 모두 패러디의 모독자다. 기억될 신화를 기대하진 않지만, 농익지 않은 연기로 무대를 어슬렁거리는 만용은 접어두어야 한다. 향기 없는 전쟁의 성화는 어둠속에 묻힐 뿐이다.

진정한 패러디를 위해 “껍데가는 가라.”

박종진 기자


입력시간 : 2004-09-02 16:51


박종진 기자 jjpar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