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와 오늘] 과거의 재발견


“우리 역사 속에서 정의의 깃발을 들었던 사람 중에 승리하고 그 승리결과를 자손에게 물려준 역사가 있나. 훌륭했다는 사람 중에는 현실정치에서 성공한 적이 없다는 것이 우리 역사다. 어떻든 세상을 바꾸는 것은 우리 생각이고 우리의 생각은 역사에서 비롯된다. 세상을 바꾸고 생각을 바꾸려면 역사를 바꾸는 수밖에 없다. 지난 역사를 새로 해석하고 앞으로 만들 역사에 대해 새로운 계획을 세워야 한다. 과거 역사가 지속되지 않기 위해서는 의식적으로 과거 역사에 대한 인식을 바로잡고 앞으로 역사를 잘 준비해야 한다. 역사를 다시 쓰자. 그래서 역사를 다시 만들자고 말하고 싶다.” 2002년 9월 11일, 대통령 후보 시절 노무현 대통령이 영남대 강연에서 역사에 대한 소신을 밝힌 부분이다.

대통령이 되자 그 소신은 성장했다. “…독립운동사도 아직 제대로 발굴하지 못한 것 아닌가 생각된다. 이것도 남은 큰 숙제다. 한편으로 정부가 정성을 기울이지 않아 발굴하지 못한, 묻혀진 역사도 있다. 그런 역사를 열심히 발굴하고 있는 것 같지만, 한편으로는 좌우 대립의 비극적인 역사 때문에 독립운동사 한쪽은 알면서도 묻어두고 있는 측면이 있다. 저는 지금 우리 체제 속에서 과거 독립운동 시기의 선열들이 가졌던 이념과 사상이 어떤 평가를 받든 역사는 역사라고 생각한다. 있는 사실대로 밝혀져야 한다.”

노무현 대통령이 8월 25일 독립유공자 및 유족 150명을 초청, 함께 한 오찬에서 한 말이다. 이 말은 또 성장해 열린우리당은 ‘진실 규명과 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 기본법’을 국회에 제출하게끔 했다.

“역사는 역사”, “세상을 바꾸고 생각을 바꾸려면 역사를 바꾸는 수밖에 없다”는 이중모순 속에 쌓여 있는 노 대통령의 역사관은 세계 최초의 발상이다.

적어도 50여년간 미국의 헌법 기초 과정, 그 결과로 나온 대통령제도에 대해 연구한 올해 77세의 포레스트 맥도널드 박사(앨라배마대 명예교수)가 올 6월에 낸 ‘과거의 재발견-한 역사학자의 회고록’ 속에는 미국의 역대 대통령 중 노 대통령과 같은 역사 창조론 주창자는 없었다.

노 대통령이 청와대의 리더십 비서관에 연구하도록 했다는 미국의 비주류 출신 대통령인 앤드류 잭슨(1833~37년 재임), 아브라함 링컨(1861~65), 데오도르 루즈벨트(1901~09)도 역사에 대해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 텍사스의 한 시골마을 오랜지 출신인 맥도널드는 어린 시절 직업야구선수가 꿈이었고 대학에 들어가서도 소설가가 되려 했다. 역사학자가 된 것은 대학 시절에 불기 시작한 미국 역사의 좌파적 해석에 대한 반발에서였다.

미국 독립운동과 헌법 제정에 대해 많은 역사학자들은 자본가들이 그들의 이익을 지키기 위한 독립운동이며 헌법은 그 이익을 지키기 위한 법이라고 쓰고 있었다.

그는 1952년부터 1년 8개월간 독립 당시 13개 주 의회의 독립과 헌법에 관한 논의를 조사했다. 결론은 “독립운동이나 헌법의 기초는 자본가들의 경제적 동기이기 전에 ‘우리 국민’이 주체였음이 실증된다”는 것이었다.

그는 62년 이혼 후 제자였던 브라운대 2년생 엘렌과 결혼했다. 그는 본래 ‘과거의 재발견’을 쓰려고 했을 때 미국의 역사를 수정주의, 신좌파 시각에서 보는 역사학자들을 비판하는 책을 쓰려 했다.

그때 아내 엘렌은 권했다. “나는 내가 16세 신입생 때 당신이 연설한 ‘건국 아버지들의 지적 세계’를 듣고 결혼을 결심했다. 당신의 연설은 역사학자들의 역사 이야기가 아니었다. 그런 것을 쓰지 말아야 한다. 역사에 대한 책을 써라. 현재의 사건과 미래를 예측하는 그런 책이어야 한다.”

그는 덧붙이고 있다. “역사는 물론 과거에 관한 것이다. 현재 일어나고 있는 것은 현상이지 역사가 아니다. 적어도 20~30년 전의 현상이 역사가 된다. 나는 내가 30세가 된 1952년 전의 일이 역사라고 생각한다.”

그는 회고록을 쓴 이유를 밝혔다. “나는 역사학자나 전문가들을 위해 이 책을 쓰지 않았다. 나 같이 역사 보기, 읽기에 재미있어 하는 이들을 위해 썼다. 역사가는 어느 정도의 주관과 글쓰기의 요령을 갖고 과거에 일어났던 일들을 가능한 넓고 자세하게 살핀 후 이를 요약하는 것이다. 역사는 역사가 아니다. 역사가가 역사 속에서 다시 발견하는 것이다.”

그의 끈질긴 추적 끝에 내린 결론은 ‘미국의 대통령제-지적 역사’(1994년 출간)에 집약되어 있다.

“미국의 대통령은 나쁜 사람, 좋은 사람을 가려내는 그런 일을 하는 게 아니라, 국민에게 해가 되지 않는 정부를 대표하고 특히 국가의 안보 위기에 대처하고 국민이 자유롭도록 노력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그가 살핀 역대 대통령 중 누구도 ‘역사를 바꾸겠다’고 말한 사람은 없었다. 그는 초대 조지 워싱턴, 3대 토머스 제퍼슨에 대한 평전도 썼다. 또한 부시 대통령의 초청으로 백악관에서 지난 12월에는 특별 연설을 하기도 했다. 레이건도 87년 그를 초청했으며 닉슨은 은퇴 후 뉴저지 자택에서 그와 3시간 이상 역사 이야기를 나눴다.

지금 노 대통령이 원하는 “역사는 역사다”라는 논의는 대통령의 몫이 아니다. 그건 김우종 한국대학신문 주필의 주장처럼 “대학에서 역사를 가르치고 배우는 역사학도들이 할 일이다.”

입력시간 : 2004-09-08 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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