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와 오늘] 우리에게 회색지대는 있는가


“지난 광복절에 몇 분의 유공자, 유족에 대해 포상을 했다. 그래도 아직 1만명이 되지 않는다. 프랑스 같은 나라는 불과 4~5년 동안 30만명이 정부로부터 레지스탕스로 공식 인정 받고 포상을 받았다. 그런데 우리는 36년, 의병 시기까지 따지면 50~60년이 훌쩍 넘는 침탈의 역사를 겪어 왔는데, 아직 1만 명 밖에 포상 못했다는 것이 부끄럽다.” 노무현 대통령이 8월 25일 독립 유공자와 유가족을 초청해 가진 오찬에서 한 말이다.

과거 청산의 모델을 1940년 6월부터 1944년 8월까지 나치 점령하에 있었던 프랑스가 이후에 취한 조치에서 찾은 것이다. 노 대통령은 9월 5일 밤에 MBC의 ‘시사 매거진 2580’에 나와 과거사 청산 문제를 특유의 어법으로 전했다. “…해야 할 때 해야 할 일을 해야 한다. 취학 연령이 된 아이를 경제 좋아지면 하자면서 11살 때 초등학교에 보내야 하나. 당장 과거사 정리해서 돈 생기는 거 아니고 시끄럽기만 하니까, 조용히 해라 뭐 이런 거 아니겠는가. 정말로 해야 될 일이면 ‘의심스러운 사람’이 하더라도 받아 들이는 것이 옳다.”

노 대통령이 자신을 ‘의심스러운 사람’이라고 표현한 것은 정말 의심스럽다. 여당인 열린우리당은 8일 이런 대통령의 자조적인 ‘의심’ 속에서도 국회 내무위에 ‘친일 반민족 행위 진상규명 특별법’개정안을 상정했다.

프랑스 역사학계에서 역사학에 대해 이론적인 반성을 한 샤를 세뇨보스(1854~1942ㆍ‘역사학 연구 입문’저자)는 “질문(의심, 의문)한다는 것은 매우 유익한 일이다. 그러나 거기에 대답한다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다”고 설파했다. 적지않은 사람들이 노 대통령 자신에 대해 인정하듯 모든 사실(史實)에 대해 의심이 많은, 질문이 많은 ‘의심스러운 사람’이 왜 위험한 해답을 그렇게 빨리 찾았을까?

그에 대한 답이 될는지 ‘의심’ 스럽다. 노 대통령은 8월 20일에 나온 서원대 세계 지역 문화연구소 박지현 상임연구원(1969년생)이 쓴 ‘누구를 위한 협력인가 – 비시 프랑스와 민족혁명’을 읽어 봤으면 자조적인 ‘의심’을 풀었을 지 모른다.

이화여대, 서강대 대학원을 나와 2002년 파리 1대학에서 나치 점령하에서의 비시정부를 연구, 박사학위를 딴 박 연구위원. 그녀는 노 대통령이 염려하는 것과는 달리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 초등학교를 다녔다. 부모가 사다 준 ‘이야기 한국사’를 일고 또 읽으면서 “역사는 어느새 그녀의 과거이자 현재이며 미래가 되었다”.

박 연구위원이 프랑스의 역사학에서 배운 것은 “인간 역사를 추구하기 위해 정형화 하지 않고 끊임없이 변화하는 프랑스 아날(annales) 학파”의 연구 태도였다. 그 창설 1세대의 한 사람, “머리는 차갑게 그러나 가슴은 뜨겁게”를 실행한 마르크 블로크(1886~1944)와의 만남이 프랑스를 알게 했고, 더욱 한국의 역사를 바로 보게 했다.

독일과의 짧은 전쟁 중 프랑스에서 최고령 예비역 대위로 참전한 스트라스브르 대학의 역사학 교수인 블로크. 1940년 6월 독일과 휴전 후에 대학에 잠시 돌아갔다가 그는 리옹에서 레지스탕스 대장이 된다. 그는 1944년 6월 16일 리옹에서 데스카모에 의해 처형되기까지 여러 곳을 전전하며 2권의 책을 썼다. 프랑스의 패배를 다룬 ‘이상한 패배-1940년의 증언’과 프랑스와 인류가 나아갈 역사의 길을 내다 본 ‘역사를 위한 변명’이 그것이다.

박 연구원이 놀란 것은 이런 프랑스의 대표적 지성인이 1994년 그가 교수직을 17년간 지낸 대학이 그의 이름 좇으려 하자 반대가 일어났다는 대목이다. 반대 선전문은 “독일 점령이 곧 프랑스 지성인의 패배를 뜻한다는 것을 알았음에도 이를 교육적 소명으로 전환시키기보다 그 책임에서 벗어 나고자 레지스탕스에 참여했다. 전쟁 중에 교육자로서 책임져야 할 교육 개혁에 대한 소명을 실천하지 못했다”고 되어 있었다.

그녀는 이런 충격의 진실을 끝까지 추적했다. 그래서 우리가 일제하 강점 당한 경험을 프랑스의 비시 정부가 당한 경험을 모델로 해 우리 나름의 역사 의식으로 해석했다. 비시 정부는 대독 휴전 후인 1940년 11월, 569대 80으로 정부 수반에 페텡 원수를 앉힌 자발적 협력 정권이었다. 그리고 독일과 대등하게 유럽의 강대국이었다.

그녀의 머리에 와 닿은 것은 붉은색인 좌파, 희색인 우파 지식인들과는 별도로 회색의 제 3 지식인 그룹이 비시를 지지하고 국민들도 상당수에 으르렀음을 깨달은 것이었다. “우리는 프랑스의, 영웅주의적이지도 않고 기회주의적이지도 않은 지적 풍토를 몰랐다”는 자각이 왔다. 그리고 다가오는 서글픔은 “반일대 친일, 좌파대 우파라는 틀 안에 연속적으로 이어지는 지성 문화의 이분화가 지금까지도 아픔과 갈등으로 남아 있다”는 데서 왔다.

박지현 박사는 그래도 희망을 잃지 않았다. 비록 프랑스가 우리의 청산 모델이 되지 않았더라도 그 사실을 안 것은 우리에게 위험한 답을 준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늘날 우리가 과거 청산에 매달리는 것은 현대 우리 지식인에 대한 불만 때문인지 모른다. 좌우파라는 이데올로기와 친일, 친미, 기회주의로 배를 채우려는 지식인 모습에 신물이 나자 과거의 자화상에 직면하여, 현재는 변화시켜 바로 세워야 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 여전히 남과 북, 보수와 진보로 나뉘어 또 다시 대립되는 삶을 위한 혁명을 이루려는 회색지대의 한국 지식인들이 존재한다고 믿고 싶다.”

노 대통령이나 열린우리당, 한나라당 의원들은 서로 ‘의심스러운’마음을 풀고 박지현 박사의 문고판 84쪽짜리 책을 읽어보기 바란다. 우리에게도 ‘회색지대’가 있는지에 대한 해답이 있다.

입력시간 : 2004-09-14 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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