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ople] 왕가리 마타이, 아프리카 최초 여성 노벨상 수상

숲을 지켜낸 평화와 환경의 파수꾼

1999년 봄. 세계는 머리를 붕대로 칭칭 동여매고도 한 손에 물뿌리개를, 다른 손에 묘목을 든 채 케냐 나이로비 인근의 카루라(Karura) 숲을 향해 걸어 가는 한 아프리카 여성의 투지에 놀랐다. 며칠 전 숲에 나무를 심으러 갔다가 개발업자들이 고용한 무장괴한의 습격을 받아 머리가 깨진 채 병상에 누워 있던 그가 이를 악물고 다시 일어선 것이다. 올해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왕가리 마타이(64) 케냐 환경ㆍ천연자원ㆍ야생생물부 차관이 그 주인공이다.

당시 마타이를 향한 폭력을 보다 못한 코피 아난 유엔 총장 등 세계의 지도급 인사들이 들고 일어났다. 케냐의 지식인들도 그의 옆에 섰다. 개발업자들과 유착돼 수수방관하던 케냐 정부는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정중히 사과를 한 뒤 카루라 숲을 지키겠다고 약속했다. 바로 그 순간부터 마타이와 카루라 숲은 환경 운동의 상징으로 자리잡았다.

아프리카 최초의 여성 노벨상 수상자로 기록된 마타이의 이력에는 ‘처음’이라는 수식어가 자주 붙는다. 그는 미국과 독일에서 공부한 뒤 71년 케냐 여성으로는 처음으로 나이로비대에서 생물학 박사 학위를 받았고, 76년 나이로비대 첫 여성 교수가 됐다. 이번 노벨평화상 수상도 아프리카인으로 7번째지만, 아프리카 여성으로는 사상 처음이다.

그는 이어 77년부터 인생의 전부라 할 수 있는 ‘그린벨트 운동’을 시작했다. 이 캠페인은 숲을 지킴으로써 사막화를 방지, 아프리카가 직면한 가뭄과 기아를 막겠다는 것. 마타이는 “숲이 살아야 우리가 산다”고 외쳤고, 어느덧 3,000만 그루 이상의 나무가 심어졌다.

지금까지 주로 정치적 평화활동을 한 인사들에게 주어져 온 노벨 평화상이 환경운동가 마타이가 수상하게 된 것은 평화상 창설 100 넘기며 정치인 수상 일변도에서 탈피해 다양한 분야의 활동가들에게도 문호를 넓히겠다는 노벨위원회의 의지 때문이다. 이로써 ‘그린벨트 운동’을 86년 ‘범아프리카 그린벨트 네트 워크’로 확대시키는가 하면, 98년에는 ‘2000년 연대’라는 국제적 조직을 결성하던 마타이의 평화 활동은 더욱 탄력을 받게 되었다.

마타이의 노벨 평화상 수상을 두고 일각에서는 노벨위원회가 여성 환경 운동가, 그것도 아프리카인을 선정, 의도적으로 정치적 논란을 피하려 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마타이가 그 누구보다도 인권 신장과 세계 평화에 이바지한 여성이라는 데는 이론이 없을 듯.

정민승 인턴기자

입력시간 : 2004-10-14 16: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