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을 접으며] 진정한 통일의 길을 생각하며


“내가 이 아이들에게 사기(詐欺) 치는 것은 아닌지, 항상 자신을 되돌아 봐야 합니다.”

셋넷학교 교장 박상영씨가 교사 28명에게 행여 잊을까 항상 당부하는 말이다. 실제로는 각각 교수나 입시 학원 강사이니, 알고 보면 막강 강사단인 셈. 그들이 사기를 치다니? 우여곡절 끝에 북한땅을 벗어나 여기까지 온 북한 청소년들에게 그 같은 자세를 견지해 온 까닭에 그는 세계를 향해 열린 창이 될 수 있었다.

숨막히는 여정을 거쳐, 이제 한국의 분망한 일상을 익히며 감내하는 10~20대. 세계화와 후기 자본주의의 폐해를 온 몸으로 수용해야 하는 그들의 ‘맑음’이 왠지 불안해 보이기까지 했다면, 기자가 주제 넘어서였을까? 남한의 땅과 남한 사람들이 냉정한 자본주의속에서 만들어 낸 갖가지 풍물들은 그 경계인들에게 대단한 이물감으로 다가왔을 터이다.

그러나 이 곳은 일단 동경의 땅이다. 탈북 청소년들이 가장 갖고 싶어 하는 물건이 휴대폰이라는 사실은 이들이 자본주의 사회에 대해 갖고 있는 집단무의식을 반영해 주는 대목이다.

그들은 돈의 논리를 모른다. “사기 치지 말라”는 박 교장의 말은 자본주의 사회에 이 아이들이 너무 쉽게 길들여져 다치지나 않을까 하는 의구심의 표현이다. 그들마저 대입이나 신분 상승을 위한 남한의 교육 시스템으로 내몰 수 없다는 다짐이기도 하다. 그의 통일 논리에 귀 기울여 보자. “남과 북이 그냥 하나 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하나인 적도 없었을 뿐더러, 그렇게 된다면 흡수 통합의 방식밖에 없다.”셋넷학교를 여타 탈북청소년 재교육 기관과 달리 보이게 하는 것은 교장의 명확한 노선과, 그에 뜻을 함께 하는 교사들 덕이다.

이 학교는 100여명의 후원자들이 보내 오는 월 평균 150만원의 돈으로 고만고만 꾸려 간다. 개교식때 대안교육담당자를 보내 “내년 예산에 반영하겠다”는 등 교육 인권의 차원에서 호의를 보내 온 교육부 등 관계 기관이 아직은 실질적인 도움은 못 된다. 수시로 직원을 보내, 현황이나 애로점 등을 묻고 가는 경찰의 ‘관심’이 따스한 호의로 열매 맺기를 바랄 따름이다.

이 학교의 교훈(校訓)에 한 번 더 눈길이 간다. ‘뚜벅뚜벅 세상 속으로, 사뿐사뿐 세상 밖으로.’당당하게 들어 가, 유연하게 살자는 말이다. 가장 큰 아쉬움은 뭘까? “밥을 못 해 줘, 아이들이 도시락을 싸 들고 오는 현실”이라고 박씨는 말했다. 그런 현실이 제대로 설명되지 못 한다면 바로 그런 것도 그가 말하는 바, ‘사기’가 아니겠는가.

셋넷학교에서는 파릇한 북한 말씨와 함께 웃음꽃이 피어 나고 있었다

장병욱 차장


입력시간 : 2004-12-02 19:02


장병욱 차장 aj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