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을 접으며] 절망은 희망의 어머니였다


죄가 있다면 가난이었다.

‘성적은 상위권이었지만, 중학교 졸업 후 화장품 용기 제조회사 견습공으로 일했다. 1년 뒤 어렵사리 고교에 진학했지만 타향에서 친구 집을 전전하다 보니 공부보다 놀 궁리가 앞섰다. 싸움 꽤나 하는 덕에 서클의 ‘짱’이 되어, 퇴학 결정까지.

군대를 다녀오자 비보(悲報)가 날아들었다. 고교 졸업 후 공장에 취직해 어려운 집안을 이끌어 오던 여동생이 연탄가스 중독으로 세상을 떠난 것이었다. “모든 게 못난 내 탓”이라는 편지 하나 달랑 두고 아버지는 집을 떠났다.

이후 상경, 봉천동 의류 공장 포장반을 거쳐 의류 다림질 작업을 익혔다. 주경 야독으로 공무원이 되고, 다시 침대 회사 사장에까지 승승장구하는 듯 했다. 그러나 삶은 또 다시 그를 속였다. 외환 위기가 그의 사업을 송두리째 부숴 버리고 거리로 내몰았을 때, 아버지는 15년 만에 말기 암환자가 되어 나타났다. 좋은 병원에서 진찰도, 통증을 없애는 주사도 못 놓아 드리고 그를 영영 먼 곳으로 떠나 보냈다.’

때로는 현실이 영화보다 더 극적이다. 주인공 ㈜데코리 대표 강신기씨의 삶은 불꺼진 시대에 한 줄기 광선처럼 다가온다.

그는 최근 ‘바퀴 두 개 달린 스케이트보드’인 에스보드를 발명해 세계적인 발명 전시회를 휩쓸고, 수백억원의 로열티 계약을 타 낸 주인공. 그가 다름 아닌 IMF 노숙자 출신으로 성공 신화를 일궈냈다는 사실은 뭇사람의 부러움을 끌어내기에 족하리라.

사람들은 이러한 그의 이력에 감탄하고 박수를 보낸다. 그리고 묻곤 한다. ‘맨주먹의 성공’을 일군 비결이 자못 궁금하다고. 그러나 이에 대한 강씨의 답변은 기대에서 조금 어긋날지도 모른다. “몸서리 쳐지도록 절망이 엄습할 때마다, 나는 반대 급부로써 희망을 떠올렸다”는.

로또 1등 당첨으로 현실을 꿈꾸는 이들에게 그의 대답은 너무나 교과서적일 지 모른다. 그러나 곰곰 새겨 들으니, 그 속에 뼈가 있다. 노숙자 생활을 하는 틈틈이 신문을 읽고 제품에 대한 아이디어를 떠올린 버릇에서,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희망을 키워 갔다는 것이다.

‘성공의 지름길을 찾기보다, 어떤 역경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는 힘을 기르라.’ 희망 전도사의 메시지다.

배현정 기자


입력시간 : 2004-12-17 11:39


배현정 기자 hjba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