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을 접으며] TV를 끄면…


웃을 수도 슬퍼할 수도 없는 ‘아버지와 아들’에 관한 에피소드 한 토막.

고향을 떠나 대도시에서 대학을 다니는 아들이 오랜만에 집에 전화를 한다. 따르릉. 따르릉. 아버지: “여보세요” - 아들: “아버지 저예요” - 아버지 평소와 다름없는 응답: “응 너야, 기다려 엄마 바꿔줄게” - 아들: “…”

이런 전화가 몇 차례 반복된 뒤, 어느날 갑자기 아들은 자신과 아버지의 관계가 왜 이토록 서먹서먹하고 남같이 느껴지는 지 고민이 됐다. 뭔가 잘못되었다고 확신한 아들은 아버지와 진진하게 대화해 봐야겠다고 생각하고 다시 집으로 전화를 했다.

따르릉. 따르릉. 아들: “여보세요. 아버지 저예요” - 아버지: “그래, 기다려 엄마…” – 아들(다급하게): “엄마가 아니라 아버지께 드릴 말이…” - 아버지(이상하다는 듯): “왜? 무슨 사고 쳤어?” - 아들: “아뇨, 그냥 아버지와 얘기를…” - 아버지: “너 돈 떨어졌니?” - 아들(당황하며): “저는 단지 아버지와 대화하기 원해요” - 아버지(놀란 듯 급히): “너 술 마셨니?” - 아들(거의 절망적으로): “아버지, 저는 아버지의 사랑스러운 아들이고 부자(父子)로서, 제 인생과 아버지의 삶에 대해 대화하고 싶어요!” – 아버지(얼어 붙은 듯): “…”

그 뒤 이어진 부자의 대화는 상상에 맡긴다. 이 에피소드를 수년전 서양의 교육심리학자에게서 듣고 깜짝 놀랐던 기억이 있다. 우리의 ‘아버지와 아들’ 그것과 너무도 흡사해서다. 일터에서 쫓기고 잠깐 집에 와서는 리모컨만 눌러대는 아버지 그리고 멘토(mentorㆍ정신적 교사) 없이 TV를 아버지 삼아 장성해 방황하는 아들. 현대사회 가족의 슬픈 스케치다.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 가로놓인 벽은 산업사회의 강퍅함 뿐 아니라 중독된 듯 보는 TV이기도 하다.

숙명여대 서영숙 교수는 새해를 맞아 ‘TV끄고 살아보기’ 범국민 운동을 펼친다. TV를 끄면 가족이 보인다는 것이다. 새해벽두 금연, 금주의 다짐과 더불어 ‘1년에 1주일 TV끄기’ 실천도 해보면 어떨지. 서 교수는 당장 TV끄기가 어렵다면 리모컨이라도 던져 버릴 것을 권한다.

조신 차장


입력시간 : 2004-12-30 14:23


조신 차장 shincho@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