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스컴과 현대사회] 나로 인해 비롯된 일이 많았다


유난히 결속력이 강한 유태인들이 동족 유태인 한명을 골라 놓고, 손볼 데가 있다며 벼르고 있는 사람이 있다. 미국 매사츄세츠 공과대학 (MIT) 언어학 교수이자 저명한 칼럼니스트인 노암 촘스키다. 촘스키는 유태인이면서도 이스라엘정부와 일방적으로 이스라엘을 싸고 도는 미국을 가장 매섭게 비판하는 사람이다.

한 마디로 미국 정부가 이스라엘의 적들을 테러와 파괴만 일삼는 악의 화신으로 몰아 부치면서도 이스라엘에 대해서는 일방적으로 편들고 있다는 것이다. 촘스키에 따르면 미국 언론에서 드러난 미국식 민주주의는 미국에 대한 맹목적인 애국주의에 다름 아니다. 거대 언론들은 무자비하고 광범위하게 이뤄진 미국의 라틴아메리카 침공과 미국의 지원을 받은 많은 독재자의 만행을 눈감아 주었고, 그에 저항하는 세력을 악마로 몰아부치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매스컴에 관한 촘스키의 주장은 이른바 절대주의 이론으로 유명하다. 이 이론으로 그는 정작 자신의 전공인 언어학계보다도 언론계에 더 주목을 받았다. 한 마디로 표현의 자유는 어떠한 경우에도 보장 받고 또 보장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촘스키가 아우슈비츠 포로수용소가 없었고, 심지어 가스실의 존재마저 부정해 전 세계 유태인들을 경악케 한 프랑스의 포리송 교수를 옹호한 사건은 절대주의에 대한 그의 신념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포리송은 자신의 발언으로 대학에서 쫓겨났으며 급기야 유태인의 암살 위협으로 인해 경찰이 신변보호에 나선, 이상한 인물이었다. 유태인의 암살 위협에 처한 포리송을 지지하고 나선 또 하나의 ‘이상한’ 유태인이 바로 촘스키다. 이날 이후 촘스키는 신나치주의를 지지하는 정신 나간 유태인쯤으로 비난 받았다.

이 과정에서 눈여겨 볼 것은 촘스키는 한번도 포리송의 주장 자체를 지지한 적이 없다는 사실이다. 그는 단지 포리송이 그렇게 주장할 수 있는 표현의 자유를 옹호한 것 뿐이었다. 설사 포리송의 주장이 터무니없다 하더라도 침묵시켜서는 안 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예를 들어 인종 차별 주의자가 인종 차별을 선동하고 전쟁광이 전쟁을 하자고 떠들더라도 그들에게 그렇게 말할 수 있는 자유는 보장되야 한다는 것이 이른바 절대주의 이론의 핵심이다. 물론 표현의 자유에 관한 촘스키의 절대주의 이론에 무조건 동의하기는 어렵다. 아마도 어떤 경우에도 표현의 자유는 존중되어야 한다는 큰 원칙을 강조한 것이라고 볼 수 있겠다.

이러한 괴짜 유태인 촘스키는 미국의 거대 언론들이 ‘국민적인 컨센서스를 제조하는’ 과정을 통해 자신들의 의견을 마치 전체 국민 여론처럼 둔갑시키고 있다고 비판한다. 엘리트 미디어들이 자신들이 속한 지배 계급의 이데올로기에 충실히 봉사한다는 것이다. 엘리트 미디어들이 선정한 의제가 다른 매체들에게 맹목적으로 수용되는 현실에 대해 촘스키는 절망하고 있다. 그래서 촘스키는 일반인들의 생각과는 달리 미국이 세계 그 어느 나라 보다도 덜 성숙한 나라라고 주장했다.

최고의 선진국이면서 상대적으로 높은 문맹률, 대통령이 공공연히 하느님을 언급하고 성경의 창조론이 과학이고 진화론을 대신해 이를 교과 과정에 반영해야 한다는 나라, 현실에 대한 심각한 고민보다는 풋볼과 농구에 열광하는 사람들이 이를 반영한다고 본다. 특히 미디어의 영향이 너무나 강해 미디어에 나오는 모든 정보가 진실인 줄 아는 보통 미국 사람들에 대해 개탄하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이 출입 기자들과의 송년 만찬 중 “2004년은 자신으로부터 비롯된 일들이 너무 많았다”고 술회한 바 있다. 노 정권과 적대적인 관계에 있다고 알려진 거대 언론들이 이 말을 교묘하게 이용해 지난 한 해가 대통령으로 인해 나라가 혼란스러웠음을 은근히 강조했다. 일면 맞는 말이고 부인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그러나 말이다, 언론은 이 같은 혼란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지 한번 묻고 싶다. 2004년 한 가 언론으로부터 비롯된 일이 너무 많았다고 생각하는 것은 필자만의 생각일까.

김동률 연세대 언론연구소, 매체경영학 박사


입력시간 : 2005-01-12 11:28


김동률 연세대 언론연구소, 매체경영학 박사 yule21@emp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