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와 오늘] 묵살이냐 노 코멘트냐


콘돌리사 라이스 미 국무장관이 3월19일에 서울, 21일에 베이징 방문을 마치고 가면 22일엔 북한 박봉주 총리가 베이징을 찾는다.

그런 후에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나 북한 외무성의 ‘묵살’(默殺)이나 ‘노코멘트’의 발언이 있을 것이다.

라이스 국무는 방한, 방중, 방일에 앞서 워싱턴포스트와의 회견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내가 진실을 말했다는 데 추호의 의심이 없다고 생각한다.”“북한 주민들은 지금 비참하다. 북한 주민들이 나무껍질을 먹는다는 것과 그들의 기아에 대해 여러분도 들었을 것이다. 우리는 북한 핵문제라는 단기적 문제를 풀어야 하지만, 그 때문에 북한에서 실제로 일어나는 일을 말하는데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라이스 국무의 발언은 그가 상원 인준청문회에서 북한을 ‘폭정의 전초기지’라고 한 것에 김 위원장이 "어쩌겠다는 건지 명백히 설명 해야 한다."고 다그친 데 대한 답변이며, 이번 6자회담 관련 3개국 방문의 이유를 밝힌 것이다.

미국이나 세계의 주요언론 동북아 문제 논객들은 라이스 국무가 역대 국무장관 중 대통령의 뜻을 간명하고 단호하게 표현하는 현실주의 장관이라고 평한다.

부시 대통령은 2기 집권에 나서면서 북한에 대해서는 말을 꾹 참았다. 워싱턴포스트지의 국무부 출입 대기자인 그랜 케슬러에 의하면, 북한에 대해 “적대적 의도(hostile intent)가 있다”는 말도 하지 않고 있었다는 것이다. 라이스 국무도 이 구절은 말하지 않았다.

부시 대통령이 북한에 대한 말을 꾹 참기 전에 한 발언들에도 ‘적대적 의도’라는 표현은 하지 않았다. 그가‘악의 축’ 발언이 있은 지 한 달도 되지 않은 2002년 2월20일 서울에 처음 와 연설 했을 때도“침략 할 뜻이 없다”고 했다.

그는 구체적으로“나는 자유라는 말을 사랑합니다. 나는 국민들 삶에 자유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굶주림을 견디고 있는 체제의 나라를 생각하면 괴롭습니다… 나는 북한의 지도자 김정일이 그의 국민을 자유스럽게 하지 않는 한 그에 대한 내 생각을 바꾸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북한을 침략할 의도가 없습니다. 남한도 북한을 공격할 의도가 없습니다. 명백하게 말하면 내가 ‘악’이라고 말한 것은 북한체제, 정부에 대한 것이며 북한 국민에게 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북한 국민에게 동정과 동감을 가지고 있습니다”고 밝혔다.

이런 부시의 ‘침략할 뜻’ ‘공격할 의도’가 없다는 것은 올 2월10일 북한 외무성의 핵보유 선언에서 엉뚱하게 말이 달라졌다. 북한 외무성은“우리 공화국을 적대시하고 기어이 고립 압살해 보려는 2기 부시 행정부의 기도가 완전히 명백해졌다. 수차 언명해 온 바와 같이 우리는 미국에 ‘제도전복’을 노리는 적대시 정책(hostile policy)을 포기하고 조미평화공존에로 정책전환 한데 대한 정당한 요구를 제기하고 그렇게만 된다면 핵문제도 다 해결할 수 있다는 입장을 표명한데 따라 2기 부쉬 정권의 정책정립과정을 인내성을 갖고 지켜 보았다”고 주장했다.

또 북한은“대통령 취임연설과 년두교서, 국무장관의 국회인준 청문회 발언 등을 통해… ‘폭압정치의 종식’을 최종목표로 선포하고 우리나라도 ‘폭압정치의 전초기지’로 규정하였으며 무력사용도 배제하지 않을 것이라고 공공연히 폭언 하였다”고 부시 2기 행정부의 대북한 기조를 평가했다.

그랜 케슬러 대기자는 이 성명에 나온 ‘적대시 정책’이란 말에 놀랐다. 부시 대통령이 2002년 2월 이후 말을 아낀 ‘적대적 의도가 없다’는 말이 ‘적대시 정책’으로 까지 성장했기 때문이다.

부시 대통령이나 라이스 국무장관이 “미국과 한국은 북을 침략 할 뜻이 없다”는 말을 2기 국정연설이나 취임발언에서 아낀 것이 미국의 잘못 일까? 라고 케슬러 기자는 묻고 있다. (워싱턴포스트. 2월 13일자)

이에 대한 답이 될는지 모르겠다. 1945년 7월 27일 미국, 영국, 중국은 일본에 대해 무조건 항복을 받아들이라는 포스담 선언을 했다.

시게노리 외상은 히로히토 천황에게 떨리는 목소리로 ‘소련 수상의 서명이 없고 국가 또는 천황의 지위에 관해 불명확하지만 ‘무조건 항복’이라는 말은 군에 대해서만 사용되고 있다는 점’ 등을 설명했다.

일 천황은“여하튼 이제 전쟁은 그만두게 될 전망이 생겼군. 그 정도만으로도 다행이라고 여기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오. 여러 가지 논의할 여지야 있겠지만 원칙적으로 수락할 수밖에 없지 않겠소. 그렇지 않으면 전쟁을 계속 해야 되오. 더 이상 국민을 고통스럽게 해서는 안됩니다”라고 답했다.

그러나 일본 내각은 포스담 선언이 최후통첩이라는 점을 인식 못하고 ‘사태정관’이란 결정을 내렸다.

스즈끼 겐타로 수상은 군부의 반발이 두려워 기자회견에서 “나는 그 공동성명이 카이로 선언의 재판(再版)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정부로서는 아무런 중대한 가치가 있는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묵살’할 뿐”이라고 말했다.

미국의 뉴욕타임스는 당시 스즈끼의 회견 기사를 “일본, 공식적으로 거부”라고 썼다. 미국 정부는 ‘묵살’을 ‘ignore’로 번역한 일본의 동맹통신의 기사를 읽고 ‘원자탄을 떨어뜨리겠다’고 결정했다.

전후에 스즈끼는 아들에게“‘묵살’ 이라는 말은 사실은 ‘no comment'라는 뜻으로 쓴 것”이라며 “그런 말이 일본어에 없던 게 사실 아닌가”라고 술회했다.

그후 8월6일, 8월7일에 히로시마, 나가사키에 떨어진 원자폭탄의 피해는 얼마인가.

이제 3월말이나 4월에는 라이스, 김 위원장이 ‘침략 의사 없다’ (no - hostile - intention)에서 ‘적대시 정책’ (hostile policy)에 대해 ‘묵살’하거나 ‘no comment’해야 한다. 김 위원장은 ‘노 코멘트’했으면 좋겠다.

입력시간 : 2005-03-22 1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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