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관계사 새로보기] 한국인·일본인(1)


현재 지구상에 살고 있는 인류의 직계 조상인 현생인류(호모 사피엔스)의 기원에 대해서는 세계적으로 두 가지 학설이 대립하고 있다. ‘아프리카 기원설’과 ‘다지역 진화론’이 그것이다.

아프리카 기원설은 ‘미토콘드리아 이브’가설로 널리 알려져 있다. 미토콘드리아는 세포 내에서 산소를 이용해 에너지를 생산하는 소기관으로 세포 핵 속의 DNA와는 별개의 독자적 DNA를 갖고 있다. 핵의 DNA가 생식과정에서 아버지 DNA와의 교차를 통해 뒤섞이는 반면 핵 밖에 존재하는 미토콘드리아 DNA(mtDNA)는 섞이지 않은 채 모계로만 이어져 내려간다. 이 때문에 mtDNA는 오랜 진화과정을 통해서도 거의 원형을 유지하며, 부분적인 변화는 돌연변이에 의해서만 일어난다.

생명의 진화가 단순한 것에서 복잡한 것으로 진행해 왔기 때문에 DNA 염기서열이 얼마나 다양한가 하는 변이 정도는 환경변화의 크기, 그에 따른 돌연변이 확률과 비례한다. 즉 다양한 형질을 많이 나타날 수록 환경변화도 컸고, 진화에 걸린 시간이 긴 것이 된다. 이것이 ‘분자시계’의 개념이다. mtDNA는 비교적 짧고 구조도 단순해서 핵의 DNA보다 비교 조사가 쉽다. 세계 각지 사람의 미토콘드리아를 조사해 변이 정도를 살핀 결과 아프리카 사람의 mtDNA 변이가 가장 다양했고 ‘분자시계’개념을 적용한 결과 가장 오래된 변이를 보였다. 이는 아프리카에서 이 mtDNA를 가진 여성이 가장 먼저 나타났음을 뒷받침한다. 그 여성이 바로 15만~20만년 전 아프리카 사바나 지대의 한 여성, 즉 ‘미토콘드리아 이브’다.

애초에 ‘미토콘드리아 이브’가 한 명의 여성일 수는 없다. 그러나 mtDNA가 모계로만 이어지기 때문에 딸을 낳지 못한 여성의 mtDNA는 사라진다. 확률적으로 1만명의 여성이 있어도 1만 세대 뒤로 mtDNA를 물려줄 수 있는 한 명을 제외하고 나머지 여성의 mtDNA는 사라진다. 결과적으로 미토콘드리아 이브의 숫자는 극히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아프리카 기원설에 따르면 현생인류는 100만년 출현한 직립원인(호모 에렉투스)과는 다른 계통으로 진화해 온 것은 물론 거의 비슷한 시기에 출현한 네안데르탈인이라는 인간아종과도 다른 독립된 종이다. 또 아프리카에 공통조상을 둔 인류가 세계 각지로 이동하여 오늘날의 인류를 이루었으며 주된 이동경로는 아프리카_아라비아_인도_동남아_중국 남부에 이르는 남방루트나 아프리카_근동_시베리아_동북아에 이르는 북방루트로 갈렸다. 북미와 남미에는 주로 북방루트를 거쳐 온 사람들이 베링해를 건너갔고, 일부 남방루트를 거친 사람들도 건너갔다.

이 가설은 첨단 유전자 기법을 활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힘을 얻었으며 다양한 후속연구도 잇따르고 있다. 유전자 기법은 현재의 인류를 대상으로 신체 형질과 유전자 특성을 폭 넓게 조사해 공통인자와 변이를 추출하고, 공통인자를 거슬러 올라가 과거와 현재의 관계를 살필 수 있다는 점에서 강한 흡인력을 갖는다.

북한에서 발굴된 '력포사람' '승리산사람' '만달사람'의 복원모형

그렇다고 아프리카 기원설이 전통적인 ‘다지역 진화론’을 압도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아프리카 기원설의 허점을 파고드는 새로운 화석 발견과 고고ㆍ인류학적 연구 성과도 끊이지 않고 있다. 유전자 기법을 활용한 연구에서도 아프리카 기원설에 의문을 제기하는 결과가 나오고 있다.

다지역 기원설은 고인류와 현생인류의 문화적 접목을 중시한다. 한 지역의 석기문화가 연속성을 갖고 발달했고, 비슷한 시기에 다른 지역과 발달 정도가 같은 석기문화가 존재했다면 그 석기를 사용한 주인공이 어느 한 지역에서 나와 세계 각지로 퍼져나갔다는 가설은 성립될 수 없다는 것이다. 알타이 지역 여러 곳에서 발견된 약 25만년 전 중기 구석기시대의 석기가 당시 유럽지역의 석기와 비슷한 기법으로 제작됐고, 한국의 석기문화도 상당한 연속성을 갖고 발달했음을 보여 주는 증거가 나오고 있다.

다지역 기원설에 가장 적극적인 것이 중국과 북한이다. 중국에서는 1990년 베이징원인보다 40만년을 위로 거슬러 올라가는 100만년 전의 고인류 화석이 발견됐다. 또 2002년 스촨(四川)성 펑제(奉節)현에서 14만년 전의 것으로 보이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악기가 출토됐다. 이 악기를 사용한 것은 약 12~25만년 전에 살年?인류여서, 모든 현생인류가 아프리카에서 이동해 왔다는 가설을 재검토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북한에서는 1960년대 상원군 검은모루 동굴에서 약 70만년 전의 타제석기와 여러 종류의 짐승 뼈 화석이 다량 발굴됐다. 2002년 함북 화대군 석성리 화산용암 속에서 약 30만년 전의 인류화석이 나와 ‘화대사람’으로 명명됐다. 앞서 1970년대에 약 10만년 전의 ‘덕천사람’‘력포사람’화석이 발굴되기도 했다. 약 4~5만년 전의 ‘승리산사람’, 완전한 형태로 발굴된 약 2만년 전의 ‘만달사람’도 있다. 남한에서도 단양 금굴에서 70만년 전 구석기 시대 유적이 발굴된 바 있다.

북한 학자들은 이런 화석 발굴 성과를 근거로 한반도의 고인류는 아득한 옛날부터 독자적진화과정을 거쳐 왔다고 주장한다. 이런 주장은 검은모루 동굴 유적의 연대를 100만년 전으로 끌어 올려 한반도의 고인류가 오히려 대륙으로 퍼져 나갔다는 데로까지 나아가고 있다. 북한 학계의 이런 주장은 주체사상과의 관련을 감안하면 액면 그대로 인정하긴 곤란하지만 다지역 기원설을 보강한다는 점에서 흔히 인용된다.

아프리카 기원설이든, 다지역 기원설이든 몽골 등 중국 북부와 바이칼호 주변 시베리아 지역, 한반도와 일본 등지에 살아 현재의 주민에게 유전자를 물려준 사람들이 유전적으로 가깝다는 점은 인정한다. 북아시아인으로 부를 수 있는 이들은 동남아나 중국 남부에 살았던 남아시아인과는 뚜렷한 유전형질의 차이를 보인다.

일본의 한 연구자는 혈청의 항체 유전자 연구를 통해 북아시아인의 유전적 근접성을 밝혔다. 몽골인종의 특징적인 유전자 결합 가운데 하나인 혈청 속의 'Gmab3st' 유전자 존재 여부를 조사한 결과 바이칼호 북쪽에 사는 뷰리엇족의 52%, 한국인의 41%, 일본인의 45%, 북극 에스키모의 44%에서 발견된 반면 중국 허베이(華北)에서는 26%, 허난(華南)에서는 9%에 불과했다.

비슷한 유전적 친소 관계는 턱에서 정수리까지의 거리인 두장(頭長)과 두개골의 폭인 두폭(頭幅)의 비율인 ‘두장폭지수’ 조사, 귀지(귓밥)의 건습 비율 조사, B형 간염 바이러스의 항원형 분포 조사 등에서도 나타나고 있어 상당한 신뢰성을 갖는다.

북아시아인이 아프리카에서 시베리아를 거쳐 이동해 왔건, 동북아시아대륙의 어느 곳에서 독자적으로 진화해 왔건 먼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면 대단히 가까운 관계에 있었다는 것은 하나의 사실로 굳어져 가고 있다. 또 북아시아인의 유전적 특질이 에스키모는 물론 아메리카 인디언, 남미의 인디오에게서도 폭넓게 발견되고 있어 해수면이 크게 낮아진 뷔름 빙기에 북아시아인이 사냥감을 쫓아 현재의 베링해를 넘었다는 가설을 뒷받침하고 있다.

이로 보아 한때 육지로 이어져 있던 한반도와 일본 열도의 인적 이동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일본 열도로 이동해 간 대륙의 동물을 따라 뛰어난 사냥꾼인 인간도 한반도를 거치거나, 혹은 시베리아에서 곧바로 일본 열도로 들어갔다.

다만 한반도 내륙지역에서는 북아시아인 공통의 유전 형질이 고르게 나타나는 반면 일본의 경우에는 간사이(關西) 지방에 집중적으로 나타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또 한반도에서 비교적 낮은 정도로 남아시아인의 유전적 특징이 나타나는 데 비해 일본에서의 그 비중은 비교적 높다는 점에서도 다르다. 물론 이는 서로 다른 역사경험에 따른 상대적 차이여서 남아시아인의 형질이 지배적인 중국과는 둘 다 먼 거리에 있다.

황영식 한국일보 논설위원


입력시간 : 2005-03-22 16:15


황영식 한국일보 논설위원 yshwang@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