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배 언론인

[어제와 오늘] 韓國과 日本國
박용배 언론인

올해 각각 광복 60주년과 패전 60주년을 맞는 한국과 일본국 사이에 일고 있는 독도와 일본 교과서 수정문제를 둘러싼 격랑은 두 정상에 의해 잠재워져야 한다.

두 정상은 물론 노무현 대통령과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다.

노 대통령이 대전대 법학부 이창위 교수(게이오 대학 국제법 법학박사)가 쓴 ‘우리의 눈으로 본 일본제국 흥망사’(2월 나옴)를 읽고 외교ㆍ국방부 간부들에게 일독을 권한 것은 잘한 일이다. 또 외교ㆍ국방부가 ‘메이지 일본의 침략사’, ‘독도’를 주제로 간부들에게 강연회를 연 것 역시 좋은 일이다.

이럴 때 지난 호에 소개한 권오기 동아일보 21세기 평화재단 이사장(전 동아일보 주필ㆍ통일 부총리)과 와카미야 요시부이 아사히신문 논설주간이 공저한 ‘韓國과 日本國’을 노 대통령과 고이즈미 총리가 읽기를 권유한다.

그 이유는 권 전 주필과 와카미야 주간이 2003년 10월부터 9개월간 네 차례 걸쳐 나눈 1905년 을사조약 이후 100년의 한일 관계에 대한 숙고에 두 정상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이 책에선 두 사람의 정치인생과 한일 관계에 대한 인식 소개에 적지 않은 지면을 할애하고 있다.

무엇보다 서로를 친일ㆍ친한을 넘은 지일ㆍ지한파라고 추켜세우며, 애국이나 혐오의 차원을 넘었다고 자부하는 두 논객이 과거의 철저한 반성에서 미래의 우의를 다지는 소망과 소원을 다짐하는 것이 이 책의 결론이다.

이 책에는 노 대통령과 고이즈미 총리에 대한 두 논객의 소망 (“발상은 소망의 생산물이다”는 느낌), 소원(“몽상은 소원의 산물이다”는 느낌)이 잘 엮어져 있다.

와카미야 주간은 2004년 3월 노 대통령에 대한 탄핵이 제기된 후 그는 어떤 사람인가 묻는다.

권 주필이 답한다. “분명 노무현 대통령은 현재 한국말로 ‘깔보다’의 대상이 되어 있습니다. 지금까지 한국에서는 이처럼 무시당하는 대통령이 없었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에 대해 강한 반발심을 갖는 한국인은 많았지만 그래도 경멸하는 사람은 없었지요. 지지 혹은 반발 중에 하나였습니다. 김대중 씨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하지만 노무현 씨에 대해선 ‘도대체 뭐야 이사람’이란 느낌을 갖는 사람이 많습니다. 어제 한 말과 오늘 한 말이 달라 신뢰할 수도 없습니다”

와카미야 주간이 이에 화답 하듯 고이즈미 총리에 대해 답한다. “고이즈미 총리도 ‘자민당을 무너뜨려 버리겠다’며 자신이 속한 자민당을 호되게 비판한 뒤 총선에서 승리해 총리가 됐습니다. 2003년 11월 총선 뒤, 고이즈미 씨와 만났을 때 ‘노무현 씨가 당신과 비슷하다’고 말한 적이 있지요. 둘다 ‘승부사’란 의미였습니다. 노무현 씨는 젊은 인터넷 세대로부터 압도적인 지지를 받아 당선 되었으며, 구체제를 모두 뒤집으려는 혁명아적인 느낌은 좋건 나쁘건 고이즈미 수준을 넘습니다.”

와카미야 주간은 또한 “국회 다수당에서 총리가 나오는 일본의 의원 내각제라는 관점에서 보면, 옳고 그름을 제쳐두고 선거에서, 즉 국민의 지지를 받아 대통령이 됐음에도 불구하고 여당이 의회에서 소수라는 것은 부자연스럽지요. 승부를 건 총선에서 약간이라도 과반수를 넘었다는 것은 정권의 정합성이 다소 이뤄졌다는 느낌이 듭니다”라고 덧붙였다.

그 후 와카미야 주간의 관심은 과거사 규명법이 반일 민족행위 진상규명법으로 국회에서 표결 통과된 배경에 대한 것이었다. 그는 2004년 9월 시모노세끼에서 열린 ‘일한포럼’에서 한 한국측 참석자가 말한 “사실 이 법의 목표는 박정희 전 대통령과 일제 강점기에 태어난 ‘동아일보’ ‘조선일보’등 셋” 이라고 한 것에 대해 권 주필에 물었다.

권 주필은“사실 저도 그런 설명은 들었는데 아마도 그리 많이 틀리지 않을 겁니다. 신문에 대해선 공적 규제 강화를 내세우고 있는데, 한국에서는 ‘공(公)’이란 명분 아래 나쁜 일을 거듭했던 역사가 있습니다”고 설명하며 이어 “최근에 정치권이 주도하고 있는 ‘친일’조사는 자신이 자신을 재판한다는 허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이러니하고 우습게도, 선두에 서서 친일을 규탄하던 열린우리당 대표의 아버지가 일본군 헌병오장이었습니다. 또 반일 투사의 손녀임을 자처하던 여성 의원의 아버지가 만주국 경찰관으로 드러나는 등의 폭로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슬픈 이야기입니다”라고 비판조로 말했다.

와카미야 주간은 노 대통령과 그를 지지하는 386세대들이 지닌 일본에 대한 인식에 관해 그와 노 대통령과의 짧은 만남에서부터 이야기를 풀어갔다.

“노무현 대통령이 결코 ‘반일’은 아니지요. 사실 노 대통령이 처음으로 2003년 6월 방일 했을 때, 일한관계와 관련이 깊은 문화인과 언론인 20명 정도를 숙소인 영빈관에 초청했습니다. 저도 그때 처음으로 노 대통령과 만났습니다. 그때 대통령이 거듭거듭 ‘반일’극복을 제창 하던 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

특히 와카미야 주간은 “김영삼 씨가 화를 냈던 아소타로 씨의 ‘창씨 개명’발언 파문 <자민당 정조 회장인 그는 “창씨 개명은 조선인이 원했다”고 동경대에서 강연, 이에 대해 김영삼 전 대통령은 “이런 발언이 나왔는데도 노무현은 잘도 일본을 방문한다”고 비난> 에도 불구하고, 노 대통령은 “종종 과거와 관련된 감정적 발언이 생기고, 이것이 순조로운 한일 교류의 열차를 예고 없이 서게 하는 것은 유감이다. 하지만 열차는 멈춤 없이 달리는 것이 좋다”고 했지요. 그 부분에서는 김영삼 씨 보다 어른으로 보였습니다”고 술회했다.

두 논객이 한일 관계에 대해 어떤 발상과 몽상을 가지고 있는지는 두 정상이 ‘한국과 일본국’을 다 읽었을 때 알 수 있을 것이다. ‘정치의 승부사’인 두 정상은 꼭 이 책을 읽기를 바란다. 그리고 두 논객과 인터뷰 기회를 가지기를 몽상한다.

입력시간 : 2005-04-12 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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