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배 언론인

[어제와 오늘] 오일게이트와 의혹사건
박용배 언론인

올해 46회를 맞은 신문의 날(4월 7일) 표어는 “독자 앞에 등불처럼, 세상 앞에 거울처럼”이었다.

지난 6일 대구에서 열린 기념식에는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 신문기자 출신 고흥길, 안택수, 최구식 의원 등 10여명 의원들이 참석 했을 뿐 문화부 장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신문의 날 당일인 7일, 국회 상임 위원회에서 송영선 의원(한나라당 여성위원장)은 기념식의 쓸쓸함을 탓했다. 그는“과연 방송의 날 행사였으면 그렇게 적게 참석했겠느냐. 신문조차 마음대로 이용하고 신문에 대해 핍박정책을 쓰는 현 정부의 언론정책을 비판한다”고 성토했다.

또한 이날 한나라당은 철도공사의 ‘러시아 유전개발 투자 의혹사건’을 ‘오일게이트’라 명명했다. 그러나 한나라당이 ‘의혹사건’(스캔들)을 ‘오일게이트’로 이름 짓기까지, 그리고 그 이후까지 주요 신문들은 ‘오일 게이트’라 부르지 않고 있다. 대개 ‘유전투자 의혹’이라고 쓰고 있다.

왜 한나라당은 이 사건을 ‘게이트’라 했고 신문들은 ‘의혹사건’, ‘스캔들’이라고 하는지는 오늘의 우리 신문의 실상을 보여주는 해답이다.

신문협회, 신문방송편집인 협회, 기자협회는 6일 성명을 통해“신문 시장이 위기라는 데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한국의 신문은 지금 최대의 위기에 봉착해 있다. 자칫 신문 시장 전체가 사상 최악의 사양화 단계로 치닫게 될지도 모른다”고 작금의 신문 위기를 우려했다.

박근혜 대표는 이 성명을 본 후 “사회의 빛과 소금으로서 신문의 역할은 매우 크다. 우리 사회의 파수꾼이 되어 권력을 비판하는 큰 역할을 수행하고 정론을 펼쳐 바른길로 나가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이런 신문관을 가진 한나라당이 왜 ‘스캔들’을 ‘게이트’라고 불렀을까. 답이 될는지 모르겠다.

지난 1월 24일 칼럼 쓰기를 중단한 75세의 뉴욕타임스 보수파 칼럼니스트 윌리엄 사파이어(닉슨 대통령의 스피치 라이터)가 쓴 ‘신 정치사전’(1993년 5판)에는 ‘문짝 만들기(gate construction)’라는 항목이 있다.

사파이어는 정치용어의 연원과 그 사용의 뉘앙스를 좇아 칼럼을 쓰는 게 특징이다. 사파이어에 따르면 닉슨의 사임을 불러온 1971년 6월 17일 워싱턴 포토맥 강변의 ‘워터게이트’ 호텔에 있던 미 민주당 선거위원회 사무실에 도청꾼이 든 사건에서 ‘게이트’(문짝)라는 말이 생겼다.

그후 ‘OO게이트’는 정치적, 정권적 스캔들에 따라붙는 ‘재난’을 뜻하는 접미어가 됐다. 사파이어 자신도 1976년 미 의회 일부의원과 한국 CIA가 연계되어 부패사건을 일으켰을 때 이를 ‘코리아 게이트’라 명명했다. 또 카터 정부의 예산국장 버트 랜스가 특혜금융 관련 ‘스캔들’을 일으키자 ‘랜스 게이트’라 규정했다. 사파이어는 1977년 ‘랜스 게이트’에 대해 연속 칼럼과 논평을 내 이 해 퓰리처상 논평부문 수상자가 되기도 했다.

사파이어는 ‘OO게이트’라 이름 짓는 것은 정치인의 일이 아님을 명백히 하고 있다. ‘게이트’가 붙게 된 것은 워싱턴 포스트의 캐서린 그레이엄 발행인, 밴 브래들리 편집 총국장, 봅 우드워드, 칼 번스타인 사회부기자 등이 닉슨의 정치행태에 대해 추적, 탐사 보도한 ‘소금 같은 기사’ 때문이다.

‘게이트’를 붙인 것은 워터게이트 호텔측이 아니었고 정치인, 정당도 아니었다. 언론이 ‘소금’과 ‘빛’처럼 ‘의혹사건’을 추적하면서 스스로 붙인 것이다.

사파이어는 저서‘문짝 만들기’에서 “문짝 만들기는 닫힌 문을 두드리는 데는 매우 유용하다”고 결론 내리고 있다.

‘닫힌 문’은 닉슨의 경우, 도청이요, 권력남용과 허위증언 교사요, 언론 협박이었다. 이를 2년 여 동안 추적, 탐사한 끝에 워싱턴 포스트는 “독자 앞에 등불처럼, 세상 앞엔 거울처럼” 되기 위해 은폐, 조작의 문을 두드리게 된 것이다.

‘닫힌 문’을 여는 자는 정치인의 집단이 아니다. 그건 기자들, 논객들이 할 일이다.

밴 브래들리 워싱턴포스트 편집 총국장은 1995년 75세에 ‘좋은 인생’이란 회고록을 냈다. 74년 8월 중도 퇴임한 닉슨이 20년 세월을 보내고 죽고 난 후였다.

워터게이트는 신문이 독자들의 존경을 받는데 큰 기여를 했다. 특히 지방 뉴스를 다루는 사회부 기자들이 저명한 워싱턴 정계 기자와 특파원들이 누리던 존경을 얻을 수 있었다. 워터게이트는 많은 고등학생들이 대학에서 언론학을 공부하도록 만들었다. 닉슨은 “정치의 장에서 어떻게 거짓말을 하는지를 알 수 있는 정치학이 없다”고 했다. 닉슨은 미국의 유능한 젊은 청년들이 언론에 몰려드는 이유가 ‘거짓말’을 벗길 진리를 찾는 열망임을 千珦?것이다.

한나라당은 ‘오일게이트’라고 명명한 것을 취소하길 바란다. ‘러시아 유전투자 의혹사건’에서 ‘게이트’란 접미어는 언론이 달도록 해야 한다.

입력시간 : 2005-04-21 1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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