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베트남, 미래 향해 함께 가자"

[피플] 베트남 전쟁영웅 보 응우옌 잡 장군
"한·베트남, 미래 향해 함께 가자"

베트남의 보 응우옌 잡(Vo Nguyen Giapㆍ94) 장군. 미국이 역사상 처음으로 전쟁의 패배를 맛보게 한 장본인이다. 160㎝의 단신에 언제나 군복 차림인 잡 장군은 지난달 30일 베트남 종전 30년을 맞아 ‘살아있는 전쟁 영웅’으로 세계 언론에 재조명되고 있다.

‘레드(Red) 나폴레옹’ ‘세기의 전술가’로 불리는 그는 항불(抗佛) 항미(抗美) 두 차례 전쟁에서 기적 같은 승리를 거뒀다.

‘세기의 전술가’라는 그의 명성은 1954년 디엔 비앤 퓨 전투에서 시작된다. 그가 이끄는 북베트남 군대는 프랑스군이 자랑하는 ‘철의 요새’ 디엔 비앤 퓨를 56일 만에 함락 시켰다. 식민지 군대가 제국주의 군대의 항복을 받아낸 것이다. 역사상 처음이었다. 프랑스 군은 이 전투의 패배로 베트남에서 물러갔다. 미국과의 전쟁에서는 1968년 1월 ‘구정공세(Tet Offensive)’로 다시 한번 세계를 경악시켰다. 전 병력을 동원해 전후방에서 동시에 공격해 남베트남 수도 사이공의 미국 대사관까지 일시 점령하기도 했다. ‘제2의 디엔 비앤 퓨’로 불리는 구정공세는 미 전역에 TV로 중계됐다. 이에 ‘전쟁에서 승리하고 있다’는 미 정부의 호언은 거짓으로 판명됐고, 미국 내 반전 운동은 더욱 가열화 했다. 국론이 양분된 미국은 내부에서 먼저 패배한 셈이다.

‘호 아저씨(고 호찌민 주석 별명)’는 사상전에서, 잡 장군은 군사전에서 전쟁을 이끌었다. 전쟁사를 새롭게 쓰게 한 잡 장군의 전략은 게릴라전과 정규전을 병행하며 마지막 승리를 쟁취하기까지 수 십년 간의 장기전을 감내해야 한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그는 이 같은 전략으로 전투에서는 졌지만 전쟁은 이겼다.

화려한 전공과 달리 개인사는 여느 베트남인과 다를 바 없다. 프랑스와의 전쟁 중에 가족이 모두 처형되거나 옥사했다. 1978년 캄보디아전에 대한 전략을 놓고 공산당 정치국과 충돌한 뒤 정치 일선에서 물러났다.

그는 한국에 대해 “과거를 지울 수는 없지만 미래를 위해 같이 나아가자”고 제안했다. ‘무서운’ 장군은 뛰어난 전술에 못지않은 넓은 포용력을 지니고 있었다. 한국의 나이 든 세대들은 그를 ‘보구엔지압’ 이나 ‘무원갑(武元甲)’으로 기억한다.

조신 차장


입력시간 : 2005-05-04 16:58


조신 차장 shincho@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