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을 접으며] 청계천, 600년 만의 회귀


청계천이 비로소 제 모습을 찾았다. 10월1일 준공 때까지 아직 단장할 부분이 많지만 기본 틀은 거의 다 갖췄다. 이명박 서울시장 취임 이래 2년도 안 걸린 짧은 기간이지만, 여기까지 오는데 무려 300년이 필요했다.

한양(서울)이 조선의 수도가 되면서 청계천은 풍수지리적으로 명당수로 대접 받았다. 태종은 1406년 처음으로 청계천을 정비하고 물길을 열었다. 그러나 풍수가 성리학의 비판을 받으면서 세종 이후 청계천은 쓰레기와 폐기물이 넘치는 흉천으로 추락했다.

청계천은 백성들과 아픔을 같이 했다. 청계천이 신음하는 동안 백성들의 생활은 양반의 파당 싸움으로 피폐해져 갔고,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이라는 엄청난 재앙은 삶의 터전을 앗아가기도 했다.

태종의 품을 떠났던 청계천은 300년이 지나 영조에 이르러 대대적인 복원 수술을 받는다. 영조는 공사 결정 전 8년 동안 하천 주변 백성들의 생활을 두루 살피고 지역 대표자들의 의견을 들었으며, 공사의 타당성을 따진 뒤에 20만 명을 참여 시켜 공사를 벌였다. 그 만큼 정성을 쏟았다.

상처 투성이인 청계천에 새살이 돋으면서 백성의 시름도 줄어들었다. 조선 후기 실학에 바탕을 둔 민본 사상이 확산되면서 백성의 위상도 그만큼 높아졌다. 그러나 일제의 식민지로 전락하면서 청계천도 같은 상황에 빠진다. 식민 정책이 강화되면서 복개 공사 등으로 질식 단계에 이르러 식민지 백성과 다름 없게 됐다.

청계천은 해방을 맞았지만 정치ㆍ사회적 혼란으로 관심 밖에 밀려 있다가 박정희 개발독재 시대에 복구공사와 청계고가도로 등으로 박제가 되고 말았다.

2003년 7월 복원 사업이 시작되면서 청계천은 비로소 숨을 쉬기 시작했다. 태종 이후 600년, 영조 이후 300년만의 일이다. 이번 청계천 복원의 주제는 ‘인간과 환경’으로, 국민의 삶의 질 향상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청계천은 우리 역사 자체고, 민초들의 자화상이다. 그런 청계천이 바짝 우리 곁에 다가오고 있다. 이제는 우리 차례다. 그의 맑은 숨소리에 어떤 화답을 할 것인가.

박종진 기자


입력시간 : 2005-05-04 16:59


박종진 기자 jjpar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