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스컴과 현대사화] 이해상충 (conflict of Interests)


몇 년 전 뉴욕타임스의 여기자 그린하우스는 워싱턴에서 열린 여성 낙태 지지 시위에 동참했다. 회사는 곧바로 그의 취재영역을 변경해 여성담당 기자직에서 물러나게 했다. 제 3자의 눈으로 취재해야 할 기자가 취재대상이 되는 이슈에 공감할 경우 공정하고 객관적인 기사가 어렵다는 이유다. 물론 당사자는 거세게 반발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의 입장에서 보면 기자이기 이전에 한 인간으로서 자신의 의사를 표현할 수 있는 기본권의 침해로 이해되지만, 뉴욕타임스로서는 공정하고 객관적인 기사를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그는 그래도 기자직을 유지했지만 이에 앞서 와인수입업자를 위해 와인 관련 책을 출판한 이 신문사의 다른 기자는 즉시 쫓겨났다. 당사자는 징계위원회에서 특정와인을 홍보하거나 편들 의사가 전혀 없었다고 주장했지만 회사는 이를 일축했다.

시애틀타임스는 편집국장의 부인이 시애틀 시장의 공보비서로 발탁되자 부인이 공보비서를 그만두지 않을 경우 즉각 해고하겠다고 선언했다. 부인이 시장의 공보비서로 있는 한 시와 관련한 기사가 독자들로부터 의심 받게 된다는 게 이유다.

이처럼 공정하고 객관적인 언론을 위한 권위지들의 노력은 가혹하리만큼 매몰차다. 물론 언론 선진국이라는 미국이라고 해서 모두 이런 모습을 보이는 것은 아니다. 시골로 내려가면 남편은 지방 관리로, 아내는 지역신문 기자로 일하는 경우가 있고, 또 당연시한다. 언론인에 대한 향응 또한 마찬가지다. 유력지 기자가 특강을 하면 일반 특강에 비해 서너 배쯤 많은 특강료를 받고, 역시 이를 당연시한다. 여행업자들은 여행담당 기자들을 지구촌 반대편의 아름다운 해변으로 모시기 위해 이른바 정키트(junket)라는 이름으로 온갖 묘책을 짜낸다. 자동차 제조업체들은 시승을 명분으로 일년쯤 공짜로 신차를 제공한다.

연전에 플로리다 올랜도에 위치한 디즈니월드는 개관 15주년을 맞아 수 천만달러를 들여 전세계 5,000명의 기자들을 초대했다. 항공에서 숙박까지 모든 비용은 디즈니월드와 관련 항공사, 호텔업계가 공동으로 부담했다. 그런데 언론사마다 대응방법은 갖가지였다. 뉴욕타임스나 시카고트리뷴 같은 전통적인 권위지는 회사가 경비를 부담했으나 대부분의 언론사는 그렇지 않았다. 심지어 일부 기자는 배우자까지 공짜여행에 초대해 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대다수 기자들은 공짜 여행이 마음에 걸리지만 기사가 되는 현실을 들어 기꺼이 참여했다. 일종의 자기 합리화인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반인들의 시선은 곱지 못했다.

흥미로운 것은 이 같은 비판을 비판하는 전문가들이 있다는 점이다. 미국의 저명 언론학자 제프리 올렌은 공짜여행을 둘러싼 이 같은 종류의 제안은 취재를 위해 과감히 받아들이는 것이 좋다고 충고한다. 갈등을 느끼지 말라는 것이다. 받아들인다고 해서 신뢰도가 떨어질 것이라는 일반인들의 의심이 더욱 큰 문제라는 것이 올렌의 주장이다. 언론인의 불가피한 점을 고려하기는 했지만 오늘날 한국에서는 설득력을 얻기가 힘들 것 같다.

노 대통령의 유럽과 터키 순방에 많은 출입기자들이 500만원이란 거금을 들여 동행 취재했다. 한푼 들이지 않고, 오히려 현지 공관장이 챙겨주는 가족 선물까지 한아름 안고 돌아왔던 ‘좋았던 옛날’에 비해 엄청나게 달라진 언론풍속도다. 그러나 이 가운데 중앙지 1개사는 회사 경비절감 차원에서 출장비를 감당하지 못해 동행 취재를 포기했다고 한다. 돈 때문에 취재도 제대로 못하는 언론사가 등장하는 게 오늘날 한국 언론의 현실이다.

김동률 연세대 언론연구소, 매체경영학 박사


입력시간 : 2005-05-12 16:01


김동률 연세대 언론연구소, 매체경영학 박사 yule21@emp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