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잡장 칼럼] '3不정책'과 '3可정책'


김진표 교육부총리는 요즘 마음고생이 심할 것 같다. 내신 등급제를 위주로 한 새로운 대입제도 때문이다. 무엇보다 2008학년도부터 시행되는 새 제도의 첫 대상이 되는 현 고1생의 반발이 예상보다 크다. 오죽하면 4ㆍ19이후 처음일 정도로 고등학생들이 거리로 뛰쳐나와 촛불시위를 벌였을까.

1학기 중간고사가 끝난 후엔 또 다른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다. 상대 평가로 바뀐데다 대입 전형에서의 비중이 높아진 내신 점수에 처음으로 반영되는 시험인 탓이다. 가채점 결과를 둘러싸고 학생들과 학부모들의 이의 신청으로 고1교실마다 뒤숭숭하다는 것이다. 친구끼리 필기 노트도 안 빌려 줄 정도로 삭막해져 가는 교실 분위기와 함께 예상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참으로 안쓰러운 모습이다. 이런 소식을 접하는 김 부총리의 속이 편치 않을 것임은 불문가지(不問可知)다.

김 부총리는 사실 “교육도 산업”이라고 언급할 정도로 교육에 대한 경제적 마인드를 중요시해왔다. 1월 취임이후 대학입시문제는 대학에 맡기는 것이 옳다고 수차례 밝힌 것도 이런 맥락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점에 비추어보면 소위 ‘3불(不)정책’ (본고사, 고교등급제, 기여입학제 금지)은 김 부총리의 생각과 동떨어져도 한참 동떨어진 것으로 판단된다.

3불정책은 이름이 말해주듯 자율이 아닌 서슬 퍼런 규제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입각 후 시간이 흐르면서 김 부총리의 목소리는 변질되어 갔다. ‘3불정책 수정 불가’로 선회한 것이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아마도 참여 정부 교육 정책의 대세를 거스를 수가 없었던 것이 가장 큰 요인이 아니었나 생각된다.

어쨌거나 3불정책은 지금 대학들로부터 거센 도전을 받고 있다. 학생 선발에 있어서 대학에 족쇄를 채워 놓으면 학교의 경쟁력을 키울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규제를 풀고 자율성을 최대한 돌려달라는 것이다. 급기야는 주요 대학의 총장들까지 나서면서 교육 당국과 대학간의 정면 충돌로 번져가는 양상을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18일 김 부총리와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총장이 회동하면서 갈등은 일단 물밑으로 가라앉은 것처럼 보인다. 김 부총리가 “본고사는 안 되지만 최대한 대학의 자율성을 보장하는 방향으로 노력하겠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정도로 대학의 불만을 누그러뜨리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좀더 근본적인 해결책이 제시될 필요가 있다고 판단된다.

이를 위해 한 가지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이 3불정책을 ‘3가(可)정책’으로 변경하는 것이다. 무조건 ‘안 된다’고 할 것이 아니라 일정한 조건을 전제로 ‘된다’로 바꾸자는 뜻이다. 가령 내신의 상대 평가제를 유지하되 대입 전형에서 일정 수준(예를 들어 20~30%) 이상 반영하면 본고사를 볼 수 있게 한다.

다만 본고사를 허용하더라도 수험생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과목 수는 제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그렇게 하면 대학별로 다양한 전형 방법이 나올 수 있고, 학생들은 원하는 대학의 전형 방식에 맞춰 공부를 하면 될 것이다. 또 내신의 반영 비율은 낮아지지만 상대 평가는 유지되기 때문에 고교 교육도 지금과 같은 삭막한 경쟁 없이 정상화될 수 있다고 여겨진다.

일정 부분 본고사가 시행되면 고교등급제는 사실상 의미가 없어지게 된다. 따라서 고교등급제 금지란 규제도 필요 없게 되며, 면접 등에서 간단히 출신 학교의 특성을 반영할 수는 있을 것이다.

기여입학제의 경우는 아직 국민 정서상 용납이 되지 않지만 방법이 없지도 않을 것 같다. 기여입학제에 대한 반발은 대부분 기부금 제공 등 학교 발전에 공헌을 했더라도 무시험으로 입학시키는 것은 있을 수 없다는 데에서 나온다. 따라서 다른 수험생들과 마찬가지로 시험을 치게 하되 일정 점수 이상만 맞으면 합격시키는 방식을 검토해 볼만하다.

지금은 과거처럼 대학이 학생만 뽑아 놓으면 굴러가는 시대가 아니다. 가능성 있는 학생들을 선발해서 잘 가르치지 않으면 경쟁에서 뒤쳐지거나 최악의 경우 퇴출을 당할 만큼 세상은 변했다. 대학들이 긴장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다. 따라서 정부도 대학을 믿고 손발을 어느 정도 풀어줄 때가 되었다. 그래야만이 대학이 발전하고, 그에 따라 나라도 발전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김 부총리의 마음도 한결 가벼워질 것이다.


김양배 부국장 주간한국부장 겸 미주부장


입력시간 : 2005-06-01 15:22


김양배 부국장 주간한국부장 겸 미주부장 ybkim@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