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장 칼럼] 저출산과 다둥이 가족


5월 27일 서울에선 눈길을 끄는 재미있는 행사가 하나 열렸다. 자녀를 5명 이상 둔 다둥이 가족 초청 모임이었다. 최근 심각한 사회 문제로 대두된 저출산 현상을 조금이나마 줄여보자는 취지에서 서울시가 마련한 것이다. 아이를 많이 나은 것을 격려하고 축하해 줌으로써 다산(多産)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한 목적이다. 이 자리엔 서울에서 가장 많은 11명의 딸·아들을 둔 가족도 참석해 시선을 끌어 모았다.

이날 행사를 신문이나 TV방송을 통해 본 국민들은 격세지감을 느꼈을 것이다. ‘아들·딸 구별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는 산아제한 캠페인을 벌인 지가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자녀 많은 가족이 환영을 받는 세상이 되었으니 말이다. “이럴 줄 알았으면 한 두 명 더 나을 걸”, 혹은 ‘지금이라도 다시 가져 볼까”하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을 법하다.

사실 전문가들이 예고하는 저출산의 부작용은 간단치 않다. 가장 크게 우려되는 것이 성장 잠재력의 약화다. 아무리 기술이 발전한다고 해도 일할 사람이 적어지면 경제가 발전하기 어렵다. 또한 노인 인구 증가에 따른 사회 복지비 부담이 크게 늘어난다. 게다가 병역자원도 부족해져 나라 지키기도 버거워진다. 이에 따라 저출산으로 고심하는 각 나라마다 출산율을 높이기 위해 갖가지 대책을 짜내느라 여념이 없다.

특히 우리나라는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출산율 저하가 심각하다. 2003년 현재 전국 평균 출산율이 1.19명이다. 서울만 보면 1.00명이다. 미국(2.01), 프랑스(1.88), 영국(1.65), 독일(1.29), 일본(1.32) 등 대부분의 주요 국가에 비해 현저히 낮다. 이런 추세로 가면 15년 뒤인 2020년부터 인구가 줄어들기 시작한다는 게 통계청의 추계다. 이에 앞서 2008년부턴 일할 사람(25~49세)이 처음으로 감소하게 된다. 정부와 정치권, 각 지자체에선 이 같은 현상을 타개하기 위해 출산 장려금 지급, 육아시설 확충과 비용 지원, 세금 감면 혜택 등 다양한 방안을 쏟아내고 있다.

그러나 이쯤에서 생각해 봐야 할 것이 있다. 과연 이런 대책들이 기대만큼 효과를 발휘할 수 있을 것이냐다. 지금까지의 대책들은 대부분 저출산의 원인을 한 가지 방향으로만 보고 마련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아이를 키우는데 들어가는 금전적 비용과 육체적, 정신적 부담의 과중이 그것이다. 하지만 간과해선 안 될 요인이 있다. 바로 결혼이나 출산 자체에 대한 인식의 변화다. “결혼은 정말로 해야 하는 것인가” “자식은 꼭 두어야 하는 것인가”라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최근 한 국책연구기관의 조사에 따르면 미혼 여성의 3분의 1정도가 결혼 후에도 아이를 낳지 않거나 1명만 갖을 계획인 것으로 나타났다. 기혼 여성들도 마찬가지다. 평균 1.27명을 낳은 25~34세 기혼 여성들 대부분이 더 이상 아이를 갖지 않겠다고 답변했다. 물론 아이를 기피하는 주된 이유가 육아에 따른 과도한 경제적, 육체적 부담일 것이다. 그러나 결혼이나 출산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 등 시대 흐름에 따른 가치관의 변화도 적지 않게 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봐야 한다.

육아와 교육에 들어가는 비용과 부담을 견디기 어려워 아이 낳기를 꺼리는 사람들에겐 기존의 대책이 분명히 유효할 것이다. 하지만 출산 자체나 여러 명의 자녀를 갖는 것이 무의미하다고 신념처럼 생각하는 경우엔 백약이 무효다. 이런 사람들은 지원을 아무리 많이 해주고, 다둥이 가족 격려 같은 행사를 아무리 많이 열어도 마음을 돌리기가 쉽지 않다. 개인 주의가 확산되면서 이런 경향은 더욱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결국 금전적, 제도적 지원을 중심으로 한 출산율 제고 대책은 한계가 있다는 결론에 이른다.

그러면 해법은 무엇인가. 우선 출산 장려와 육아 부담 완화를 위한 기존 대책을 바탕으로 과거와 정반대 의미의 ‘둘만 낳아 잘 기르자’는 캠페인을 벌이는 것이다. 평균 출산율이 2명만 되어도 대단한 성공이다. 다음엔 이민을 받아들이는 정책을 적극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현 추세대로 가면 2050년엔 총인구의 35%를 이민 받아야만 2000년 수준의 노동력을 확보할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이민을 수용하려면 관련 제도 등 많은 준비 작업이 필요하다. 학계 등 일각에선 이미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더 늦기 전에 정부가 공론화에 나서야 한다.


김양배 부국장 주간한국부장 겸 미주부장


입력시간 : 2005-06-07 15:17


김양배 부국장 주간한국부장 겸 미주부장 ybkim@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