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을 접으며] 김우중을 다시 생각하며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 한때는 세계 경제계의 칭기즈칸을 꿈꿨다. 한국 경제를 일으킨 주역으로서 젊은이들의 우상이었던 적도 있었다. 샐러리맨들의 신화, 그 자체였다. 불과 10년 전의 일이다.

그 사이에 옛말처럼 강산이 변해버렸다. 건국 이래 최대 경제 사건의 주범, 사기꾼, 도망자, 인터폴 수배자…. 칭송은 비난으로, 명성은 오명으로 바뀌었다. 그가 이끌던 ‘세계경영’호(號)가 침몰하면서 벌어진 일이다. 무리한 항해로 인해 자초한 측면도 없지 않았지만, 어쨌든 침몰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는 가슴 속을 열어 보이지 않았다. 간혹 이런저런 지인들에게 털어놓은 이야기들이 간접적으로 밖으로 흘러나왔을 뿐이다. 실체적 진실을 밝힐 기회가 없었던 것은 아닌데도 그랬다.

그런 그가 이제 돌아온다고 한다. 그 동안 몇 차례 귀국설이 나돈 적은 있지만 그 때마다 불발에 그쳤다. 이번에는 조짐이 뚜렷하다. 구체적인 날짜까지 거론된다. 뭔가 상황의 변화가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옛 대우그룹 계열사들이 성공적으로 회생한 것이 하나의 실마리가 됐을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잊혀졌거나 혹은 비난의 대상이었던 그를 다시 보자는 움직임이 힘을 얻기 시작했다. 다른 기업에서는 꺼렸지만 그가 과감히 중용했던 386 운동권 세대들은 세계경영포럼이라는 단체를 만들어 ‘김우중 재평가’ 공론화를 적극 시도하고 있다.

그가 바라는 것은 재기가 아니라 재평가라고 측근들은 전한다. 그와 대우가 품었던 꿈과 야망이 오로지 분식 회계나 부당 대출, 해외 도피 같은 파렴치한 혐의로 뒤 덮여 역사에 쓰레기로 남는 것만큼은 참을 수 없다는 것이다. 때문에 그는 검찰 조사에서 대우 패망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가감없이 밝힐 것으로 전망된다. 또 잘못은 겸허히 인정하고 사법처리도 감내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이 과정에서 법적인 잘잘못과 기업가로서의 잘잘못을 더 상세히 가리겠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라고 주변에서는 말한다.

그의 귀국이 중요한 의미로 다가오는 것은 어떤 리스트나 X파일의 개봉이 아니다. 대우 신화의 깨끗한 매듭과 거기에서 얻는 교훈, 그것일 터이다. 대우나 김우중에 대한 좋고 싫음을 떠나 국민 모두의 바람이다.


김윤현 기자


입력시간 : 2005-06-09 18:47


김윤현 기자 unyo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