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을 접으며] 인사동 유감


파리의 ‘샹젤리제’, 뉴욕의 ‘소호’, 모스크바의 ‘아르바트’, 베이징의 ‘류리창.’ 웬만한 나라나 도시들은 그만의 고유한 것을 오롯이 담은 문화ㆍ예술의 거리 하나 정도는 갖고 있다. 우리나라 서울에는? 인사동이 있다고?

흥겨운 가위소리에 맞춰 춤추는 엿장수, 구성진 대금가락으로 행인들의 발길을 붙드는 무명 국악인, 돋보기 너머로 사주와 궁합을 보는 점쟁이 영감, 호떡과 뽑기를 쉼 없이 쏟아내는 아낙. 이 정도면 괜찮지 않은가. 하지만 과연 그럴까.

인사동에서 사람들은 더 이상 장인 정신이 깃든 공예품들을 사지 않는다. “너무 비싸서 엄두도 못 내요. 구경만 하고 가요.” “이거 다 중국에서 들어 온 거 아네요?” 인사동에는 전통 문화로 포장된 얄팍한 상술이 넘쳐 난다. 쉬쉬할 것이 아니다. 인사동을 찾는 사람들은 이미 그런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인사동을 오가는 사람들이 몰리는 곳은 식당이다. “콘크리트 문화 속에서 살다가 대들보 아래에 앉아 먹으니 어릴 적 생각도 나고 좋네요. 맛도 부모님이 해 주시던 맛인걸요.” 기를 쓰고 인사동 밥집을 찾은 이유가 겨우 그 정도다. 썰렁한 화랑과 공방, 골동품 가게들과 골목 하나를 사이에 둔 식당들은 시치미를 떼고 있다. ‘밥을 먹으려면 줄을 서시오’ 라는 간판이 당당히 그 위세를 뽐내고 있다. 정체 불명의 파스타 집도, 영문으로 된 커피 가게도 보인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했지만, 인사동에서는 어쩐지 어울리지 않는다. 인사동이 라는 명칭이 우리 가슴 속에 심어 준 이미지하고는 너무 거리가 있기 때문일까.

그런 선입견을 깨뜨리자고, 시대의 변화에 맞추자고 머리를 흔들어도 영 개운하지 않다.거리 구석구석에 자리잡은 화랑에 걸린 그림들은 물 건너 온 것들이고, 국내 작품이라 하더라도 페인트로 그려진 것들 뿐, 먹 냄새는 좀처럼 맡기 힘들다. 좌판을 차리고 앉은 골동품상 주인은 큰 소리로 외친다. “인도에서 가져 온 겁니다. 아, 그건 중국 거고요.”

낡은 집들이 헐리고 그 자리에 주변과 전혀 어울리지 않게 올라간 건물들을 비난조로 말하는 것은 이제 옛 얘기다. “인사동은 그 낡고 오래된 건물들을 잘 보존하면 어느 곳보다 여유롭고 편안한 동네가 될 수 있다” 는 말도 마찬가지다. 원론만을 되풀이하는 고장 난 축음기를 언제까지 틀어야 하는 것일까. 일부에서는 인사동의 변화를 과거와 오늘이 공존하는 새로운 퓨전 문화라며 반길 줄 모르지만, 상업주의 물결에, 당국의 안일함에 인사동 고유의 빛깔은 급속히 바래고 있다.

<번드레 치장이 급했나 호들갑스런 장꾼들이 불질렀나/ 만남이 아쉬워 찾기는 하지만 둔갑한 점포들이 낯설기만 한 것을> (임영준의 ‘인사동 유감’에서)


정민승 기자


입력시간 : 2005-06-16 19:41


정민승 기자 msj@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