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장 칼럼] 서울숲과 시민의식


미국 뉴욕의 센트럴 파크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도시 공원이다. 길쭉한 사각형 모양으로 면적만도 무려 3.4㎢(103만평)에 달한다. 숲ㆍ연못ㆍ잔디ㆍ동물원ㆍ시립미술관 등 쉴 곳과 즐길 곳이 다양하게 마련돼 있어서 뉴욕 시민은 물론, 세계인의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있다. 뉴욕을 처음 방문하는 사람들에겐 꼭 들러 보아야 할 명소 중의 하나로 꼽힌다.

서울에도 ‘한국의 센트럴 파크’를 표방하는 공원이 새로 문을 열어 기대를 모으고 있다. 18일 개장한 성수동 ‘서울숲’이다. 뚝섬 일대 35만평 부지에 문화예술공원, 생태숲, 자연체험학습원, 습지생태원, 한강수변공원 등 5개 테마공원으로 조성돼 다양하고 풍성한 휴식 공간을 제공한다. 또 꽃사슴과 고라니 등 야생동물을 풀어 놓아 인간과 자연이 한데 어우러지는 즐거움을 선사한다.

이처럼 겉으로만 본 서울숲의 모습은 평화롭고 안락한 느낌을 주기에 모자람이 없다. 그러나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인가. 문을 열자마자 벌어진 일들은 되뇌고 싶지 않을 정도로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개장일인 토요일과 일요일을 포함한 주말 이틀간 무려 45만 명의 인파가 몰리면서 갖가지 문제점이 드러났다. 서울숲 관리사무소는 당초 개장 당일에는 3만여명 정도만 찾을 것으로 내다봤다. 사람이 많이 찾는 것은 사전에 입장 제한을 두지 않는 이상 탓할 일이 못 된다. 오히려 그만큼 기대와 관심이 높다는 반증이므로 환영해야 할 일이다. 관리 당국의 사전 대비 소홀이나 이용자들의 무분별한 행위가 문제인 것이다.

관리 당국의 소홀한 대처로 지적될 수 있는 것은 허술한 안전관리와 편의 시설 부족, 생태숲 동물 관리 미숙 등이다. 어린이가 물에 빠지는 사고를 당한 후 일부 보강되기는 했지만 연못 주위나 주요 시설물에 안전요원 배치를 늘릴 필요가 있다. 또 화장실과 휴지통 부족으로 관람객들이 큰 불편을 겪었으므로 가능한 범위 내에서 하루 속히 확충을 해야 한다. 생태숲에 방사한 야생 동물들의 보호에도 좀더 신경을 써야 한다. 아직 새로운 환경에 적응이 안 돼 스트레스를 받는 동물들이 많으므로 관람 공개 시간을 조정하거나 입장객들이 소리를 지르는 등 괴롭힘을 주지 않도록 적극적인 안내가 바람직하다..

관리 당국의 허술한 대비보다 더 심각한 것은 관람객들의 무분별한 행태다. 관리 당국의 문제는 여론의 압력 등으로 대부분 이른 시일 내에 개선될 여지가 많다. 그러나 이용객들의 행태는 기본적인 질서의식과 연결되어 있어서 쉽게 고쳐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대표적인 것이 쓰레기나 담배 꽁초를 아무데나 버리는 것이다. 공원 곳곳에 음식을 싸온 비닐 봉지나 음료수 병 등이 어지럽게 널려 갓 문을 연 도심 생태 공원이란 의미를 무색케 했다. 서울숲 관리사무소측에 따르면 개장 이틀간 나온 쓰레기량만 2.5톤 트럭 11대 분량에 달했다고 한다. 가져온 쓰레기를 되가지고 가진 않더라도 최소한 휴지통까지는 들고 가 버리는 것이 도리다. 지금 우리 사회엔 이 같은 기본 규범조차 지키지 않는 사람이 많다는 얘기다. 참으로 안타까운 현상이 아닐 수 없다.

쓰레기 투기는 서울숲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며, 어제 오늘의 일도 아니라는 데 더 큰 심각성이 있다. 관리나 단속이 뜸한 전국의 유원지나 산, 행사장엔 여지 없이 쓰레기가 넘쳐 난다. 최근 ‘한국인의 시민의식’에 대해 조사한 보고서에 따르면 줄서기, 노약자에 자리 양보하기 등은 많이 나아진 반면 쓰레기 투기는 공공건물 내를 제외하곤 과거와 별 차이가 없거나 오히려 나빠진 것으로 분석됐다. 그만큼 쓰레기 버리기가 고질적인 현상이 되어버렸다는 것이다. 모든 공중 도덕이 그렇지만 쓰레기 치우기도 조금만 의지를 갖고 몇 번 시도해 습관화 되면 어렵지 않게 행할 수 있다. 특히 어른들의 솔선수범이 아이들에 대한 교육 효과가 크므로 부모 세대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쓰레기 투기 외에 술판이나 고스톱판을 벌이고 출입 금지 구역에 들어가 노는 행위 등도 하루빨리 없애야 할 것들이다.

선진국이란 경제력만 가지고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욕구의 절제를 통해 사회의 규칙과 질서를 지켜야 진정한 의미의 선진국이 될 수 있다. 성숙한 시민의식으로 서울숲이 명실상부한 한국의 센트럴 파크가 될 때 우리는 선진국에 한 발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


김양배 부국장 주간한국부장 겸 미주부장


입력시간 : 2005-06-29 04:59


김양배 부국장 주간한국부장 겸 미주부장 ybkim@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