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장 칼럼] 이산가족 화상 상봉


남북 이산가족 상봉이 내달 중 재개될 전망이다. 지난달 평양을 방문한 정동영 통일부 장관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전격 면담한 자리에서 합의를 보고, 뒤이은 남북 장관급 회담에서 구체적인 타결을 본데 따른 것이다. 북한의 최고지도자가 공개적으로 약속한 사항이므로 경천동지할 변수가 생기지 않는 한 상봉은 무난히 이루어질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번 상봉에서 눈길을 끄는 것이 있다. 바로 화상 상봉이다. 화상 상봉은 고령화로 거동이 불편하거나 시간적, 경제적 여유가 없는 이산 가족들에게 좀더 많은 상봉의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직접 상봉과 별도로 추진되고 있다. 화상 상봉을 위한 기술 및 시설에도 큰 문제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 및 통신 업계 전문가들에 따르면 일단 남북간에 전용선을 구축한 뒤 특정 장소에 디지털 캠코더 등 화상 회의 시스템이 갖춰진 화상 면회소를 세우는 게 가장 현실적이며 손쉬운 방법이라고 한다.

남북 이산 가족의 화상 상봉은 그 동안 6자회담 등 좀더 비중 높은 이슈에 가려 언론에서 크게 취급되지 않았지만 가만히 따져보면 매우 의미가 큰 행사다. 우선 많은 이산 가족들이 모니터를 통해 생사를 확인할 수 있어 사이버 세상에서 대대적인 인간 드라마가 펼쳐질 것으로 보인다.

그만큼 세계적인 관심을 끌어 한반도 평화 정착과 통일을 위한 분위기 조성에도 도움이 될만하다. 남북한은 현재 지구촌에서 유일하게 분단 국가로 남아 있어 이산 가족 상봉 자체만도 화제거리가 될 수 있는데, 화상을 통한 만남이니 세계 언론의 집중적인 조명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화면 상태와 전송 속도, 운영 노하우 등 화상 상봉의 질적 수준이 높을 경우 우리 IT산업의 뛰어난 위상을 세계에 다시 한번 과시할 수 있는 기회도 될 수 있다. 또 남북관계나 통일 문제에 별 관심이 없는 컴퓨터 세대인 젊은 층에게도 새로운 시각을 심어 줄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그러나 화상 상봉에서 우려되는 부분도 없지 않다. 가장 걱정이 되는 것은 그 동안 여러 번에 걸친 이산 가족 상봉 행사에서 한 번도 헤어진 가족을 만날 기회를 갖지 못하다 겨우 화상을 통해 생사를 확인하는 경우다. 화면으로만 이루어진 상봉이 오히려 이산 가족들의 가슴앓이를 더욱 키울 수 있기 때문이다.

수 십년 동안 애타게 보고 싶어 하던 부모, 자녀, 형제, 자매 등 가족들을 화면을 통해 만났을 때의 감동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처음엔 살아 있음을 확인한 것만으로도 가슴 벅찬 환희나 회한을 느끼겠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모니터의 기계 덩어리가 재회의 간절함 해소를 위해 아무것도 해 줄 수 없음을 알고 허탈감만 커질 것이다.

직접 만나서 부둥켜 안고 손도 잡아 보고, 얼굴도 만져 보며 소리 내 울어야 쌓였던 한이 풀릴텐데,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니 마음의 응어리는 더욱 커질 수 밖에 없지 않겠는가. 반면에 그 동안 한번이라도 상봉 행사에서 만난 적이 있는 가족들은 오히려 차분한 상태에서 서로의 안부를 물어 보며 회포를 풀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화상 상봉은 되도록 한 번 이상 가족들을 만나본 사람들을 위한 2차 상봉 수단으로 사용하고, 아직 한 번도 만나 보지 못한 가족들을 위해선 직접 상봉의 기회를 대폭적으로 확대하는 게 바람직하다. 이런 측면에서 이산 가족 상봉을 늘리기 위한 북한 당국의 과감하고 신속한 조치가 요구된다. 또 내달 착공키로 한 금강산 면회소도 하루 빨리 문을 열어 본격적인 만남의 장소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

이산 가족 상봉이 처음 이루어진 것은 1985년 9월이다. 그 후 지난해 3월까지 총 10회에 걸쳐서 상봉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1,000만 이산 가족 중 잠시나마 재회의 기쁨을 맛 본 사람은 채 1%도 지나지 않는다. 더군다나 매년 1만2,000명 정도가 고향 땅을 다시 밟아 보지 못한 채 고령으로 사망하고 있다고 한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모처럼 남북간에 화해의 분위기가 무르익어 가고 있다. 이산 가족들의 직접 상봉은 최대한 늘리고 화상 재회는 상시화 해서 이들의 한을 조금이나마 덜어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 그런 점에서 내달 처음으로 남북간에 실시될 예정인 화상 상봉의 성공 여부에 많은 관심이 쏠린다.


김양배 부국장 주간한국부장 겸 미주부장


입력시간 : 2005-07-06 15:08


김양배 부국장 주간한국부장 겸 미주부장 ybkim@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