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와 오늘] 차분한 분석과 비꼬는 번역


노무현 대통령은 7월11일 청와대 수석·보좌관들에게 역설했다. “최근에 예기했던 비정상적인 정치구도, 지역구도를 바로잡는 문제나 연정과 관련한 논의는 경제민생이 제대로 되려면 언젠가는 반드시 바로잡아야 한다.” 이어 “숭실대 강원택 교수의 저서 '한국의 정치개혁과 민주주의'를 일독하기 바란다. 그 글의 분석과 문제제기가 탁월하다고 평가한다”고 덧붙였다.

1961년 서울 태생인 강원택(康元擇) 숭실대 정치학과 교수는 서울대 출신으로 런던경제정치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국 정당학회, 선거학회 이사이며 2003년에는 '한국의 선거정치 : 이념, 지역, 세대와 미디어' 라는 책을 냈다. 학위논문은 영국, 캐나다 등 4개국 선거를 비교 연구한 것이다. 그가 5월에 낸 '한국의 정치개혁과 민주주의'는 노 대통령으로부터 '탁월하다'는 평을 받기 이전에 정치학자의 정열이나 분노, 의지를 감춘 채 차분하게 현재의 우리 민주주의 운영을 분석하고 있다.

특히 제5공화국 이후 노무현 정부가 들어서기까지의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정부의 선거제도, 정치자금, 정당국회운영에 대한 개선방향을 국내외 사례를 통해 실증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그는 현재의 대통령과 국회의 분점적 정치행태의 원천응ㄹ 우리 정치의 토양인 정치 지도자들의 지역구도를 이용한 정당 구성에 두고 있다.

그는 김영삼 정부를 이렇게 분석했다. “내부 연합세력간(민정-민주-자민련)의이질성은 김영삼 정부에 태생적 제약조건으로 다축적(多軸的) 형태로 발전되어 왔기 때문에 어느 한 세력이 유권자 수준 혹은 의회 수준에서 과반수를 넘는 안정 다수를 차지하기란 어렵다.” 그는 이를 개선하기 위해 다음 대통령이 가져야 할 의지, 시각을 정리했다. “합당이든 동맹이든 정당간 연합의 방안을 모색 할 수밖에 없으며 연합이론은 한국정치를 이해하는 중요한 시각을 제공해주고 있다.”

그는 대통령선거에 대해 먼저 손을 볼 것을 제안했다. ▲대통령과 국회의원 선거시기 및 임기를 같게 하고 대통령 중임을 허용하며 ▲대통령 통치무력화, 지역구도 개선을 위해 유권자의 50%가 넘는 후보자가 당선되는 결선투표제 도입 등이 주요골자다.

무엇보다 지역극복을 위해 ▲국회의원 수를 400명 선으로 늘리고 지역구와 비례대표제 비율을 조정하며 ▲독일에서 시행되고 있는 혼합형비례대표제를 도입해 정당투표에서 얻은 표로 각 당의 전체의석 수를 결정하고 지역구에서 얻은 의석을 뺀 나머지 의석만큼 비례대표 의석을 배분한다는 것이다.

노 대통령은 강원택 교수의 차분한 개혁안을 그답게 “우리 정치의 구조적 문제를 해결한다면 대통령 권력을 내 놔도 되겠다”는 통 큰 말로 해석했다.

이런 노 대통령의 해석에 대해 광주 서남대 김욱(1958년 생. 광주 출신) 법학과 교수는 색다른 '번역'을 했다. 김 교수는 지난 4월 '김대중의 끝나지 않은 이야기'를 출간했다. 그는 연세대에서 '주체사상을 통한 마르크스적 자유와 평등실현의 법리와 문제점'으로 박사학위을 땄다.

그는 노 대통령의 5, 7일 연정발언과 10일 열린우리당 문희상 의장이 3기 정치개혁협의회 제안을 약간 비꼬는 투로 번역(분석, 예측한대로 '선한 의지'와 '당리당략'이 뒤섞인 것이라는 번역이다.

'선한 의지'는 지역문제 해결에 대해 노 대통령이 내놓은 선물이다. “야당이 대타협에 대해 손잡을 때는 정권을 달라면 드릴 테니 대회정치 해보자는 것이다. 그리고 이 큰 선물을 선뜻 내 줄 만큼 노 대통령의 지역문제 해결의지는 아주 강력하다”는 선한 의지에서 나온 것이라는 주장으로 그는 번역했다.

'김대중 이야기'에서 김 전 대통령의 역사를 끝나지 않을 '위선의 역사'로 해석하는 이 법철학자는 계속 비꼬는 투다. 그는 '선한 의지'의 속뜻에는 국회의원 선거제도 중 중대선거구,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채택하여 열린우리당이 제1전국당이 되려는 당리당략이 숨겨있다는 겄이다.

“열린우리당은 중선거구제로 영남에서는 2등으로, 그리고 비영남지역에서는 1등 혹은 2~3등으로 다수의석을 획들할 수 있다고 믿고 있다. 열린우리당이 이런 식으로 제1전국당이 되는 순간 우리나라의 지역문제가 눈 녹듯이 해결된다는 생각이다. 노 대통령은 7일 편집·보도국장들과의 오찬에서 이렇게 말했다. '사실 열린우리당이 전국당 되는 게 목표이지 않습니까'”가 김 교수 번역의 핵심이다.

강원택 교수나 김욱 교수의 '차분한' 분석과 '비꼬는' 번역 사이에 노 대통령의 의지는 어떻게 피고 질까를 주시해 볼 만하다.


박용배 언론인


입력시간 : 2005-07-22 17:17


박용배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