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와 오늘] X파일과 워터게이트


7월31일 오전10시께 ‘제주포럼’ 강연차 제주 롯데호텔에 들어서는 김영삼 전대통령에게 질문이 쏟아졌다.

“재직 시 미림팀 보고서를 받지 않으셨습니까.”

김 전대통령 : 침묵.

“X파일에 대해 한 말씀해 주십시오.”

김 전대통령 : “아이고 아이고.”

“검찰이 X파일과 관련해 김현철 씨를 소환할 방침이라고 알려졌습니다. 심경을 말씀해 주십시오.”

김 전대통령 : “아이고 아이고.”

20여분의 연설을 마친 김 전대통령은 오전 10시40분께 호텔문을 나서며 덧붙여 말했다. “아이고, 날씨 참 덥다.”

한 여름이니까 날씨가 더운 것은 물론이다. 그러나 X파일 열기가 짜증과 더위를 함께 섞은 무더위가 되지 않기를 ‘아이고’ 바란다.

이런 ‘아이고’의 답답함 속에 두 달 전 5월31일 하오2시(현지 시간)께 위싱턴 포스트 총 편집국장실 앞에서 성명을 읽는 이 신문 봅 우드워드와 그의 동료였던 칼 번스타인의 모습이 떠오른다.

“마크 펠트는 딥 스로트(제보자를 의미하는 WP 지칭어)였고 우리 두 사람의 워터게이트 취재를 상당부분 도왔습니다. 또한 그 동안의 기록 등이 밝히는 것처럼 우리와 WP 기자들은 수많은 다른 제보자와 공무원들로부터 도움을 받아 수백가지 워터게이트 기사를 썼습니다.”

1972년6월17일 5명의 도청꾼이 워터게이트 호텔에 있는 민주당 선거본부를 침입한 사건은 74년 8월 닉슨 당시 대통령을 사임케 했다. 미 역사상 대통령이 탄핵을 받기 전 사임하는 첫 사건이었다. 또한 이 사건의 추적에 앞장 선 WP와 이를 발생 이틀 후부터 추적한 봅 우드워드와 칼 번스타인은 언론과 기자가 미국의 정치에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 지를 보여주었다.

우드워드와 번스타인이 닉슨 사임 4개월 전에 낸 ‘대통령의 사람들’이란 저서에서 ‘딥 스로트’라고 불린, 닉슨의 권력남용 등에 대한 내부 고발자가 누구냐 하는 것은 워터게이트가 10, 20, 30주년을 향해 갈 때마다 떠오르는 주제였다. 그런데 지난 5월31일 발행된 ‘베니티 페어’지 7월호에 침입 발생 33년만에 당시 FBI의 2인자였던 91세의 마크 펠트가 그의 가족과 변호사의 확인으로 “내가 바로 딥 스로트요”하고 나타났다.

이를 확인 해줄 수 있는 주체는 그의 사후에야 밝히겠다는 제보자보호원칙을 지금껏 지켜온 WP와, 딥 스로트와 직접 연결된 봅 우드워드였다. 다음이 그의 파트너였던 번스타인, 그리고 당시 총 편집국장으로 이 사건을 다뤘던 밴 브래들리였다.

우드워드와 현재의 총 편집국장인 레오나드 다우니에게는 딥 스로트의 공개 보도가 있을 것이라는 사실이 5월31일에야 전해졌다. 두 사람은 현재도 WP 무임소부 사장인 밴 브래들리, 뉴욕의 저술가로 있는 번스타인을 불러 회의를 가졌다. 다우니는 잘라 결론 내렸다. “이제 우리가 지켰던 제보자보호원칙의 고뇌는 넘어섰다.

우리가 33년간의 비밀을 지킨 것은 비밀을 깨뜨린다는 것보다 중요하다. 우리의 독자는 앞으로 우리기사의 신뢰에 바탕한 완벽성을 읽을 수 있을 것이다.” 브래들리는 덧붙였다. “마크 펠트와 그 가족이 핵심을 찔렀다. 기분이 좋다. 이제 워터게이트 역사는 마무리 되었다. 이제 끝난 것이다.”

번스타인은 지난 33년간을 회고하며 조금은 감상적이 됐다. 워터게이트 침입이 일어난 6월17일 당시 번스타인은 대학을 중퇴한7년차 기자였고, 우드워드는 WP에 온지 1년도 안된 수도권 기자였다. 현장에 투입된 두 기자는 처음으로 “워터게이트 침입자 중에 전 CIA요원 하워드 헌트가 있다”, “전 법무장관 미첼이 위원장으로 있는 닉슨 재선위원회 자금이 침입에 쓰였다”, “백악관에서 지령이 있은 듯 하다”는 기사로 사건의 기선을 잡고 있었다.

번스타인은 회고했다. 사건 발생 3개월이 지난 후 이번 침입의 배후에는 닉슨 재선위원회 자금이 있음을 알고 번스타인은 편집국 커피자판기 앞에서 혼자 중얼거렸다. “닉슨은 탄핵당할 거야.”, “그래 그럴거야.” 그의 등 너머 목소리는 우드워드 것이었다.

탄핵이 의회에서 논의된 것은 12개월 후였고 닉슨이 사임하기 22개월 전에 ‘파트너’라고 서로 부르는 우드워드, 번스타인은 그렇게 마음이 통했다. 두 사람으로 하여금 한 마음을 갖게 한 것은 닉슨과 그의 참모들이 권력을 남용하고 이를 부인하고 은폐 하는 것은 기자로서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우드워드가 쓴 ‘시크릿 맨(secret man)-워터게이트의 딥 스로트 이야기’는 7월초에 나왔다. NYT 논픽션 베스트셀러 4위로 4주째 올랐다. 대단한 랭킹이다. 1년간 계속 될 추세다. 우드워드는 이 책에서 70년 백악관 상황실 앞에서 우연히 만나 아버지 같은 후원자가 된 FBI 감찰담당 부국장 마크 펠트와의 인간적 관계의 변화를 담담히 적고 있다.

그는 결론 내리고 있다. “마크 펠트가 딥 스로트임이 밝혀지더라도 여러 의문은 뒤따를 것이다. 의문은 의문을 낳고 돌아다닐 것이며 나 같은 기자들의 추적은 계속될 것이다. 그것은 제보의 동기를 묻는 것이다. 역사에는 마지막 초안은 없다.”

그러나 그는 “펠트가 제보하게 된 동기는 애국심과 닉슨 권력으로부터의FBI독립이 아닐까”로 잠정 결론 내렸다. X파일사건 수사에 나선 검찰과 이를 취재하는 기자들이 우드워드의 새 책을 읽어보았으면 한다.

박용배 언론인

입력시간 : 2005-08-12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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